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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츄르 Nov 25. 2021

어쩌면 백신 부작용

난데없는 분노와 우울의 시기를 지나며

퇴근길 나는 길 한 가운데 드러누워 발을 동동 구르며 비명을 질러대고 싶을 정도로 불쾌했다. 내가 너무 가난하고 초라하고 비참하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이 당연한 듯 누리는 많은 것들을 나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누리지 못하는 것만 같고, 나는 나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좀 더 세세하게 풀어내자면 이랬다.

지난 6년, 회사생활을 하며 해외 여행 한 번 돈 아까워 못가보고 반지하에 살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는데, 모은 돈은 다 값이 오르지도 않을 집에 들어가고 아직도 예전에 돈을 모으던 만큼 빚을 갚으며 살아가는 가난한 생활.

가족을 포함해, 아무리 신뢰와 애정을 바탕으로 한 관계라 해도 결국 어느 정도는 계산적인, 무언가 주고 받는 관계일 뿐, 나에게 진정 아무 조건없이 애정과 관심을 주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음.

그냥 나 자신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싫음.

이 거지같은 기분의 발단은 쿠팡에서 산 2만원대 롱패딩의 고장난 지퍼였다. 지퍼를  올렸는데 지퍼가 맞물리지 않고 후크만 올라갔다. 사실 이건 내 탓이었다. 몇 번 입고나면 지퍼가 잠기지 않거나 주머니에 구멍이 뚫려 못 입게 될 거라는 것을 이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미리 돈을 모아 좋은 패딩을 마련하지 않고 추위가 닥쳐와서야 부랴부랴 당장 입을 수 있는 싸구려 패딩을 구입한 건 나였다. 지난 겨울 지퍼가 맞물리지 않고 주머니에 구멍이 나 핸드폰이 패딩 안으로 들어가 발목까지 내려가는 패딩을 그야말로 아작이 날 때까지 입다가 내년에는 꼭 입을만한 패딩을 사야겠다 결심해 놓고 결국 안 샀다. 작년에 그 패딩 때문에 매일매일 춥고 불편했는데도 말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고가의 패딩도 아니었고 저렴하게 잘 사면 십만원대, 비싸봤자 20만원대 정도의 입을만한 패딩이었는데 그 돈을 쓰는게 그렇게 아까웠다. 

이런 구질구질한 나 자신이 정말 죽이고 싶을만큼 미웠다. 내가 나 자신을 이렇게 돌보지 않으니 다른 누구에게도 사랑받을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패딩이 뭐라고, 수 개월을 여러 가지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아뒀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결국 사지도 못하고 이 지경이 되다니. 

패딩이 불러온 자기혐오는 점점 몸집을 불려 내 머릿속을 꽉 채웠고, 결국엔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나는 이 감정상태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호르몬의 장난. 이런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감정의 폭풍을 2-3일 겪고 나면 일주일 내로 생리를 시작하곤 했다. 그런데 그런 호르몬의 장난이라고 치기에도 내가 요며칠간 겪는 우울과 분노는 과한 편이다. 문득 두 달 전 화이자 1차 접종 이후로 생리가 끊겼다는 게 생각이 났다. 화이자 1차 접종날 나는 생리 둘째날이었는데 주사를 맞자마자 생리가 끊기고는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설령 이것이 백신 부작용이라 해도 모든 것은 내가 감당해야 하다. 사지가 마비되거나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길이 없는데, 개나소나 겪는 생리불순으로 무슨 억울함을 호소하겠는가.

그저 이 시기가 빨리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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