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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Oct 29. 2020

4년째 병원을 다닙니다

나는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닌다.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건 첫 직장 생활이 8개월쯤 지날 무렵이었다. 무자비한 야근으로 워라밸이 사라졌다. 새벽 퇴근을 불사했지만 야근 수당은 없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내 별명은 '응답하라 1992'다. 세후 연봉 1992만 원이 별명의 모태였다. 한 만큼 벌어갈 수 도 없었고, 배워갈 수도 없었다. 끝내 나를 쓰러지게 만든 건 팀장의 유산이었다.

 

팀장은 임신한 상태로 현장을 누볐다. 야근도 빼놓지 않았다. 광고주의 수준 이하 요구도 잘 구슬려 넘겼다. 하지만 거래처 경영악화로 광고비 연체는 막지 못했다. 사장은 팀장을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본인의 특기인 욕설과 인격모독을 팀장에게 시전 했다. 그녀가 임신 중인 건 상관없었다. 며칠 뒤 팀장은 몸이 아파서 출근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출산휴가'가 아닌 '유산휴가'를 썼다. 그것도 자신의 연차를 사용했다. 

증상이 나타난 건 이때부터였다. 야근하던 중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지럼증이 심해지자 구토가 쏟아졌다. 동기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증상을 설명하고 입원 수속을 마쳤다. 다음날 CT, MRI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별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병원을 걸어 나왔지만 구토와 어지럼증이 자주 찾아왔다. 또 다른 증상은 사람 많은 곳을 가면 답답함이 느껴졌다. 지하철 환승역과 지하상가에서 유독 심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산소를 다 마셔서 산소가 남아있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그럴 때면 지하철 몇 대를 보내고 다음 지하철을 이용했다. 지하상가는 일절 걷지 않고 하늘이 보이는 길만 걸어 다녔다.


너무 힘들었다. 어지럼증과 답답함에 시달리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불면증까지 찾아왔고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죽을 것 같았다. 사실 죽고 싶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고민 끝에 병원을 찾기로 결심했다. ‘정신건강의학과’는 낯설고 편견이 많은 진료과목이었다. 다른 병원과 조금은 다를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라식 수술을 한 안과, 스케일링을 한 치과와 다를 바 없었다. 진료 대기 중인 환자도 똑같았다. 낯선 과목이라서, 마음이 아픈 환자라고 특별하거나 유별나지 않았다.

선생님과 상담을 마치고 검사지 작성을 했다. 내가 쓴 검사지를 보며 지금 내 상태를 진단해주셨다. 나는 공황장애 일종인 ‘적응장애’를 앓고 있었다. TV에 나오는 유명인이 공황장애를 고백하는 건 봤는데, 나도 그렇다고 하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진료를 마치고 나와서 약을 받았다. 약은 식후 하루 세 번이고 저녁 약에는 소량의 수면제가 들어있다. 수면제는 위장에 좋지 않다고 조금씩 줄여나가자고 했다. 두툼한 약봉지를 받아 들고나서 내가 많이 아프다는 걸 실감하게 됐다. 선생님께선 마음이 감기에 걸린 거니까 걱정 말라며 다독여줬다. 그날 병원을 나서며 많이 울었다. 그동안 힘들었을 나 자신을 생각하니 미안했다. 이번 계기로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스스로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느덧 병원 다닌 지 4년째다. 매주 가던 병원도 이제는 한 달에 한 번 간다. 수면제는 완전히 끊었다. 선생님께선 증상이 생길 때만 먹으라며 안정제만 처방해 주시는데 증상이 많이 사라져서 약이 남는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그중에서 청년층 증가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취업, 회사 스트레스가 그만큼 무서운 일이다. 저절로 낫기만을 바라고 방치하면 병을 더 키우게 된다. 아파하고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나처럼 병원을 찾았으면 좋겠다. 마음이 감기에 걸린 것뿐이다. 부끄럽고 숨길 일이 아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을 가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면 병원 가는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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