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고백한다. 나도 물에 빠진 적 있다. 외할머니 댁 앞에 개울이 흐른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그곳에서 처음 수영을 했다. 시골에 계신 삼촌이 나의 첫 수영 선생님이었다. 처음엔 가재를 잡는다고 발목까지 오는 곳에서 놀다가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수심이 깊어지자 삼촌은 나에게 개구리 발차기를 알려줬다. 삼촌의 동작을 제법 잘 따라 해서 칭찬을 받았다. 그때부터 난 수영에 소질을 보였나 보다.
개울에서 수영하다 보면 물고기가 다리를 치고 지나갔다. 날 놀리는 거라 생각하며 그 물고기를 잡으려 헤엄쳐 돌아다녔다. 물속에서 일어서면 내 얼굴이 나왔다. 내 키보다 깊은 곳이 아니라 생각한 삼촌은 차에서 튜브를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홀로 개울을 헤집고 다녔다. 그때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물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난 지금 살아있다. 수상인명구조, 생활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며 퇴근 후 매일 저녁 수영장에 간다. 계속해서 물속을 누비고 있다. 내가 위기상황에서 탈출한 방법을 말하면 다들 믿지 않는다. 집으로 가던 삼촌이 다시 돌아와 구한 것 도 아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발견하고 뛰어든 것도 아니고 다리를 치고 간 물고기가 물 밖으로 끌어준 것도 아니다. 허우적거리던 나는 급박한 순간 ‘발이 안 닿으면 닿는 곳까지 내려가서 바위를 차고 올라와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던 손을 반대로 저어 물속으로 내려갔다. 한 번 저었을까? 아니 한 번도 아니었다. 반 정도 팔을 휘저었을 때, 바위가 발에 닿았다. 나는 그 바위를 박차고 물밖로 뛰어올랐다. 크게 호흡을 하고 다시 물속으로 내려갔다. 돌고래처럼 뛰어오르길 반복하자 얕은 곳에 닿을 수 있었다. 가쁜 숨을 정리하고 조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끔찍한 일이 벌어질 뻔했다. 가족이 알면 다시는 물 가까이 못 가게 할 것 같았다. 튜브를 가지러 간 삼촌이 돌아왔다. 같이 물장구를 치다가 할머니 댁으로 갔다. 그날 내가 경험한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과거 경험했던 위기나 공포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당시의 감정을 다시 느끼면서 심리적 불안을 겪는 증상을 '트라우마'라고 한다. 물에 빠진 경험이 있는 나는 트라우마를 겪지 않았다. 오히려 물을 더 즐기게 되었다. 바닥이 멀리 있지 않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물론 수영금지 구역엔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나는 힘든 일이 생기면 물에 빠진 날을 떠올린다. 그날은 내 취미가 수영이 된 첫날이지만 더 많은 의미가 있다. 물에 빠졌을 때처럼, 위기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당황하여 주변을 살피지 못한다. 회사에서나 학교에서나 삶을 살아가면서 자주 겪을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발 밑에 있던 바위를 떠올린다. 어려움과 위기를 타개할 탈출구는 분명 가까운 곳에 있다. 물속에서도, 물밖에서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