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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림공작소 Jan 20. 2020

두 남자의 질주

아흔 번째 영화, 포드 V 페라리를 보고


개봉 한참 전부터 기대가 컸던 영화다. 차에 대해서는 정말 관심이 없고 포드와 페라리의 대결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감독과 배우 때문에 기대가 컸다. 좋아하는 감독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바로 튀어나오는 감독은 아니지만, 필모를 살펴보면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영화는 항상 좋았던 것 같다. 처음 만나는 자유, 아이덴티티, 앙코르, 3:10 투 유마를 봤었는데, 모두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참 진하게 남았던 영화들이다. 엑스맨 시리즈는 이 감독의 로건 때문에 보고 싶을 정도이고.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영화를 재미있게 봤는데, 레이싱 마냥 영화 또한 묵직한 직구 같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군더더기가 없다. 뒤에서 반전을 터뜨리기 위한 복선 같은 것도 없었다. 캐롤 셸비 (맷 데이먼)와 켄 마일스 (크리스찬 베일)가 처한 상황과 성격이 드러나는 장면과 포드사에서 페라리를 인수하려다 실패하고 레이싱으로 복수하겠다며 큰소리치는 장면. 이 3가지 장면만으로 앞으로 펼쳐질 모든 내용이 다 설명이 된다. 이 위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모두 당위성을 갖게 되고, 억지스럽거나 지루한 전개는 전혀 없었다. 러닝 타임이 2시간 30분인데 그렇게 느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특히, 극장에서 보면 레이싱 장면에서 완전히 빠져 들어 더욱 몰입하게 된다.


영화의 주요 내용을 말하지 않으려니, 두 명의 주인공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크리스찬 베일의 출연작을 적지 않게 봤는데, 정작 그의 어떤 모습이 진짜 모습인지 잘 모를 정도다. 잘 알려진 대로 그의 말도 안 되는 다이어트 때문인데, (전작에서 100kg로 찌워서) 이번에도 30kg을 감량한 모습이라고 한다. 레이싱 할 때의 눈빛 연기도 좋았지만, 영화 예고편에도 나왔던 아들과 트랙에 누워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냉철한 승부사, 까칠한 성격 등이 두드러진 역할이었지만, 반전 매력이라고나 할까. 그 외에도 친구인 캐롤과 있을 때의 힘을 쭉 뺀 모습도 처음 보는 모습이라 새로운 면이었다. 대표적인 얼굴이 배트맨이고, 근래에 본 영화가 아메리칸 허슬의 머리 벗겨진 뚱보라서, 이런 얼굴도 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맷 데이먼이 이런 캐릭터를 맡았을 때의 연기가 좋다. 안 좋은 상황을 맞닥뜨렸지만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결국 위기를 극복하는 그런 역할. 마션의 마크 와트니 역이 가장 좋았었고,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의 벤자민 미 역할도 참 좋았다. 그리고 이번 영화도 그렇다. 친구에 대한 완전한 신뢰와 그를 미덥지 않게 여기는 경영진에 대응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장면들은 모두 헨리 포드 2세 (트레이시 레츠)와 부딪히는 장면들이기도 한데, 이 역할도 기억에 남는다. 얼핏 보기엔 그냥 금수저 물고 태어나서 돈 밖에 모르는 인물로 그려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페라리 대표는 그를 그저 회사를 물려받은 2세에 불과하다는 조롱도 했었지만, 회사의 대표로서 이 싸움에서 이기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와 그저 물려받은 사람이 아닌 레이싱에 대한 애정도 상당하다는 것도 드러난다. 캐롤 셸비에게 레이싱 전권을 넘길 때의 장면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대표적인 개그 장면으로 예고편에도 쓰인 '캐롤 셸비가 대표를 태우고 레이싱을 하는 장면'은 처음엔 그저 웃긴 장면처럼 보이지만, 그가 울음을 터뜨린 이유는 무서워서가 아니라 이 기분을 아버지가 못 느낀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단순히 개그 장면으로 보고 있다가 이 대사에 한 방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 이후에도 헨리 포드 2세는 차를 사랑하는 엔초 페라리에 비해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인물로 그려지는 묘사가 많았지만, 그래도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역할이었다. 반면 부사장은 … 생략 :) 


이 영화에 대해 아쉬운 점은 거의 없었다. 결말이 전혀 바라지 않던 방향으로 흘러버렸는데, 그건 실제로 발생한 일이라 왜곡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니.. 그 외에는 여러모로 참 마음에 들었던 영화다. 멋진 클래식카를 원 없이 볼 수 있다는 점은 보너스! 극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7000 rpm으로 가야겠다는 소리가 안 나올 수가 없는 영화다. 아마 돌아가는 길에 운전대를 잡은 남자는 100% 이 소리 한 번쯤은 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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