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두 번째 영화 아닌 드라마, 블랙 미러를 보고
보통 미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강력한 중독성, 혹은 영화 못지않은 스케일이나 완성도, 국내 드라마에서 다루지 않는 독특한 소재 등을 꼽는다. 그래서 꽤나 많은 미드를 봐왔지만, 요즘에는 새로운 미드를 시작할 때 겁나는 경우가 많다. 인기 있는 드라마들은 시즌이 너무 길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시즌이 길어지면서 완성도가 들쭉날쭉 해진다. 한때 푹 빠져봤던 위기의 주부들, 프리즌 브레이크, 로스트, 24, 덱스터 등 재미있는 시즌은 재미있지만, 어떤 시즌은 정말 어이가 없어 입 벌어지는 황당한 퀄리티를 보여준다. 그래서 주변 사람에게 추천하기가 애매할 때가 많다.
이번에 소개하는 블랙 미러는 위에서 언급한 단점이 없어서, 망설임 없이 추천할 수 있는 드라마 중 하나다. 시즌이 5개나 나왔지만, 시즌 당 에피소드 개수가 많지 않아 분량도 부담이 없고, 옴니버스 드라마이기 때문에 평이 안 좋은 에피소드는 안 봐도 그만이다 :) 어차피 내용이 이어지지 않으니 억지로 봐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다. 그리고 다행히도 에피소드 성공률이 매우 높다. 시즌2까지 봤는데 별로인 에피소드는 고작 1개 정도.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소재가 압권이다. 개인적으로 완전히 다른 세계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보다 현실 배경의 실제로 있을 법한 SF를 좋아한다. 가타카나 백 투 더 퓨쳐 같은 영화가 그러한데, 블랙 미러의 거의 모든 에피소드가 그렇다. 기억 지우는 기술쯤은 아무렇지 않게 일상화되어 있는 시대가 배경으로 나오는데, 그 구현 방법이 허무맹랑하지 않아서 좋다. 스토리에 대한 고민 이상으로, 새로운 기술의 UI, UX에 대한 고민도 적지 않게 했을 것 같다.
현재까지 본 에피소드 중에서는 시즌2의 '돌아올게'와 '화이트베어' 에피소드가 상당히 좋았다. 스포가 될 수 있어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돌아올게'의 주요 설정인 “죽은 사람과의 대화”는 머지않아 정말로 가능해질 것 같다. SNS에 올라온 사진으로 가짜 영상을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은 세상이 됐는데, 음성은 정말 코 앞에 있다. (이미 네이버에서 유인나의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서비스를 했었다) 문제는 대화의 내용인데, 이 역시 SNS의 내용을 기반으로 예전 기억을 토대로 대화 내용을 구성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만 같지는 않다.
또한, '화이트베어'는 그 구성이 정말로 참신했다. 짧은 러닝타임에 많은 것을 담았음에도 억지스럽지 않다. 40분이 순식간에 지나갈 정도로 몰입감도 좋았고, 메시지도 훌륭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꼭 도입됐으면 하는 바람이 들 정도.
얼마 전 시즌5도 공개되어서 앞으로도 볼 수 있는 에피소드가 많이 남았다. 한편 한편마다 설정도 배경도 메시지도 다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아껴보고 있다. 꼭 디스토피아라고 분류할 수는 없지만, 블랙 미러에서 보여주는 미래는 굳이 나누자면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이런 모습이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기 때문에 몰아서 보기엔 너무 아깝다. 영화보기에는 시간이 없고, 40-50분 정도 여유 시간이 생길 때마다 보기에 딱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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