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안은 오른팔이 끊어질 것 같았다. 한 달 전부터 인대가 늘어났는지 접고 펴고 힘을 줄 때마다 팔뚝에 통증이 있었다. 하지만 팔을 바꿀 수는 없었다. 왼손은 피가 나는 아이의 뒤통수를 거즈로 압박하고 있었으므로.
거친 숨이 마스크 안에 갇혀 더 뜨거운 바람으로 돌아왔다. 주변에는 잡초가 무성한 공터뿐이었다. 그 사이로 난 길을 달릴 힘이 없어 안간힘을 다해 걸었다.
저 멀리 우뚝 솟은 종합병원 건물 위로 하늘이 거뭇거뭇한 구름을 드리우고 있었다. 병원까지 남은 거리는 약 400미터.
“아빠가 미안해. 조금 있으면 병원이니까 괜찮을 거야.”
20분 전.
유모차에서 내려 놀이터에 선 아이는 잔뜩 늘어선 자전거를 보고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바퀴 달린 물건에 부쩍 관심이 많은 요즘이다.
종종걸음으로 이 자전거, 저 자전거를 오가며 만지작대던 아이는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풀썩, 그만 앞으로 고꾸라졌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다가 균형을 잃고 이번엔 엉덩방아를 찧었다. 기우뚱. 몸이 뒤로 기울었다. 넘어지지 않으려 버둥댔다. 쿵. 뒤통수가 바닥에 충돌했다.
그때 나는 세 발짝쯤 떨어진 거리에서 아이를 촬영 중이었고 평소에도 아이가 높은 데서 넘어지는 게 아니면 그대로 넘어지게 놔뒀기 때문에 굳이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첫 번째 실수였다.
우는 아이를 안아 들고 머리를 문지르다 손바닥을 보니 붉은 물감 같은 게 묻어 있었다. 아이의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뒤통수에 손가락 하나 길이만큼 피가 고여 있었다.
아이가 머리를 찧은 곳을 내려봤다. 하필이면 배수로 위였고 하필이면 철망 사이에 손톱 만한 돌이 끼어 있었다.
다급히 아이를 유모차에 태웠다. 소아과는 5분, 어린이집은 1분 거리였다. 머릿속에서 ‘골든타임’이란 말이 맴돌았다. 빨리 선택해야 했다. 어린이집 쪽으로 유모차를 돌렸다.
두 번째 실수였다.
다짜고짜 어린이집에 들어갔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 방이나 들어가서 아무 선생님이나 붙잡고 응급 처치를 부탁했다. 곧 선생님들이 몰려들었고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깜짝 놀라서 아이를 불렀다.
선생님들도 의료 전문가가 아니니 어쩔 줄을 몰랐고 처치 방법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함부로 뭔가를 붙였다간 치료에 더 애를 먹을 수도 있었다. 결국 아무 처치 없이 소아과로 향했다.
유모차를 끌고는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전복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중간에 유모차를 내팽개치고 아이를 안고 달렸다.
골든타임… 골든타임…
소아과는 3층이었고 4층에 한참 멈춰 있던 엘리베이터는 계단으로 올라갈까 고민하던 차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원을 마친 초등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나서야 엘리베이터에 오를 수 있었다.
소아과에는 대기 인원이 없었다. 선생님은 아이의 고개를 돌려 내게 찢어진 부위를 보여줬다.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도보로 10분 거리의 병원이었다.
골든타임… 골든타임…
선생님에게 택시를 타고 갈지, 걸어갈지 물었다. 걸어가는 게 안전하다고 했다. 처 부위에 거즈를 대줄 테니 꾹 누르면서 가라고 당부했다.
“바로 못 들어가세요.”
팔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과 더운 숨을 참으며 마침내 종합병원에 도착했을 때 응급실 출입구에서 간호사가 말했다. 코로나 때문에 발열 체크가 먼저였다.
아이도 나도 열은 없었다.
응급실에 들어서자 아이는 병원이라는 걸 아는지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아이가 몇 개월이고 몸무게는 얼마인지 물었다.
“19개월이고 11키로 정도 돼요.”
아이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주민번호 뒷자리가 기억나지 않았다. 아내가 쉽게 외우는 방법을 가르쳐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가물가물했다. 머릿속에서 응급실의 '응급'이 '골든타임'과 겹쳐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신경과 외래 진료를 보라는 안내를 받았다. 신경과라니? 씨티라도 찍어야 한다는 건가? 처음에는 단순히 찰과상인 줄 알았던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다. ‘골든타임’이 맴돌던 자리에서 ‘씨티촬영’이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간호사를 따라 신경과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도 아이의 주민번호를 요구했다. 아내에게 물어보겠다고 하자 그러면 물어보는 동안 접수를 하고 오라고 했다. 간호사의 품에 아이를 맡기고 접수처로 향했다.
뒤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낯선 곳에 자기를 놔두고 가는 줄 알고 서럽게 울고 있었다. 다시 돌아가서 아이를 안고 올까 고민했다. 하지만 우는 아이를 안고는 접수처에서 대화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주민번호를 물었다. 어디냐는 물음에 아이의 머리가 찢어져서 병원에 왔다는 대답 밖에는 긴 말을 할 여유가 없었다. 접수를 끝내고 돌아서자 언제 왔는지 간호사가 아이를 데리고 옆에 서 있었다. 아이는 아빠를 꽉 끌어안았다.
진료실에 들어가자 선생님이 아이의 상태를 보고 내게 물었다.
“촬영 필요할 것 같나요?”
그걸 나한테 물어보시면…?
내가 멀뚱멀뚱 서 있었지만 선생님은 대답을 기다렸다. 하긴, 말 못 하는 아이의 상태는 결국 부모가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아이가 고열로 불덩이가 됐을 때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심하게 넘어지진 않았으니까 촬영은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간호사에게 뭔가를 지시하고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거 애 잡겠는데…”
간호사의 손에는 호치키스처럼 생긴 기구가 들려 있었다. 선생님이 그것을 아이의 상처 부위에 가져다 댔다. 찰칵. 자지러지는 아이의 뒤통수에 철심이 박혔다.
“심은 5일 후에 빼면 될 것 같고요, 곪지 않게 항생제 처방해 드릴게요. 그리고 혹시 애가 평소와 다르게 축 처진다거나 너무 많이 울면 그땐 씨티 찍어봐야 합니다.”
씨티라니… 설마…
간호사가 아이의 상처 부위에 약을 발라줬다. 수납처에서 처방전을 받으러 가면서 아내에게 바로 퇴근해서 태우러 오라고 전화했다. 약국에 가서 약을 받고 나오자 곧 아내가 도착했다. 원래도 하얀 얼굴이 더 하얗게 보였다.
아이를 꼭 끌어안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아이를 아내에게 안겼다. 머릿속에서는 아이가 축 늘어졌을 때의 시나리오가 재생되고 있었다.
씨티라니... 설마...
정면으로 걸어가면 우리 집으로 가는 출입구였다. 그때였다.
“이쭈(이쪽)!”
아이가 오른쪽을 가리키며 외쳤다.
그제야 맥이 탁 풀렸다. 집에 들어가지 말고 놀자는 신호였다. 기운이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
지상으로 올라간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주변을 휘젓고 다녔다. 또 넘어질까 무서워 말려야 할 정도였다.
상처에 바를 연고가 집에 있는지 확실하지 않아서 아이를 데리고 약국에 가기로 했다. 유모차는 아까 버려둔 곳에 그대로 있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자 비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미약한 물방울이 띄엄띄엄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산은 없지만 유모차 덮개가 있으니 아이는 괜찮을 것 같았다.
연고를 산 후 바로 옆의 슈퍼에 들어갔다. 평소에도 반값 할인을 하던 아이스크림을 100원씩 더 싸게 팔고 있었다. 아내도 나도 졸인 마음에 바르는 연고라도 되는 것처럼 아이스크림을 잔뜩 골라 담았다. 20리터 종량제 봉투가 가득 찼다.
슈퍼를 나서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유모차의 덮개를 씌우자 아이가 두 팔로 번쩍 덮개를 걷었다. 상처에 비가 들어갈까 얼른 다시 덮개를 씌웠지만 그러기가 무섭게 또 걷어버렸다. 기운도 장난기도 평소 그대로였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평소처럼 배가 얼굴 만해지도록 저녁을 먹고 평소처럼 집 안 곳곳을 오가며 웃고 보채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아이의 상처에 약을 바르고 평소처럼 이를 닦였다. 평소처럼 아내가 아이를 재우러 들어가고 나는 설거지를 하기 위해 그릇을 모았다.
거실에 스탠리스 뚝배기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이가 싱크대에서 꺼낸 걸 힘자랑하듯 거실에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평소 대로의 기운과 장난기였다.
설거지를 마치자 아내가 아이 방에서 나왔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꺼내서 입에 물었다.
아이의 뒤통수에 박힌 철심을 빼면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저녁이 저물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신이 듣든 우주가 듣든 누가 듣든 좋았다. 감사를 금치 못할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