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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Jun 11. 2019

나를 번역가로 버티게 하는 것

아킬레스건염으로 두어 달째 운동을 쉬고 있다. 마지막으로 헬스장에 갔을 즈음에 러닝머신 위를 걸으며 <나 혼자 산다>를 봤다. 러닝머신에서 지루한 시간을 때우는 데는 예능 프로가 최고다.


그날 출연자 중에서 일명 ‘슈스스(슈퍼스타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이 스타일리스트 지망생들에게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힘든 순간도 많았을 텐데 지금껏 버틴 비결이 무엇이냐는 지망생의 질문에 그녀는…… 글쎄, 뭐라고 답했더라? 기억이 안 난다.


정정하겠다. 한혜연의 답이 아니라 그 말을 듣고 내가 했던 생각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생각이었던가 하면…… 


Q. 번역가로 10년 넘게 버틴 비결이 무엇입니까?

A. 간단합니다. 번역이 아니면 죽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Q. 번역을 그만큼 사랑하신단 말씀인가요?

A. 아니요.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어서 그만두면 굶어 죽을 것 같았다는 말인데요.


진심이다.


<번역가에게 필요한 것, 배짱과 비빌 언덕>에서도 말했지만 한때 한 달 넘게 일이 끊기고 샘플 번역이라고 제출하는 족족 퇴짜를 맞을 때가 있었다. 몇 년을 일했는데도 그 모양이라니 자괴감이 들었다. 이대로 이 바닥에서 퇴출되는 것은 아닌가 두려웠다.


그동안 어떻게 버티긴 했지만 이제 그만 포기할 때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이 일을 그만두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나는 대학 졸업을 한 달 앞두고 번역에 입문했다. 번역 공부를 시작했다는 말이 아니라 그때부터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책을 번역했다. 그리고 대학 졸업과 동시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리고 쭉 번역만 했다.


당연히 회사 생활은 해본 적이 없었다. 면접이라고는 휴학 기간에 인턴 면접을 본 게 다였다. 그때 면접에서 탈락한 직후에 번역 아카데미를 알게 됐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번역가가 되는 게 하늘의 계시라 생각하고 회사원이 될 생각은 일찌감치 접었다.


그러고서 몇 년이 흘러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번역을 그만두려 하니 회사에 들어가려 해도 딱히 내세울 경력이 없었다. 그 나이 먹도록 인턴 한번 해본 적 없으니 어디다 이력서를 내밀 자신이 없었다.


회사 다니는 것 말고 먹고살 만한 게 뭘까? 영어 좀 하니까 과외를 해볼까? 하지만 나는 과외도 딱 한 달 해본 게 다였다. 한 달만에 짤렸다. 그럴 만도 한 게 나는 초등학교 때 잠깐 동네 아줌마와 대학생 형에게 과외를 받아본 것 외에는 과외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과외를 하는 요령을 몰랐다. 1시간 30분 동안 쉬는 시간도 없이, 잡담도 하지 않고 기계처럼 수업만 했으니 학생의 미움을 사서 짤리는 게 당연했다. 아니면 내가 남을 가르치는 데 소질이 없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회사도 안 돼, 과외도 안 돼, 그럼 남은 건 사업인가? 그쪽은 절대 체질이 아니었다. 나는 진취적이지도 않고 추진력도 없다. 시작은 느리고 포기는 빠른 사람이다. 사람을 구워삶는 말주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독창적인 아이템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사업을 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동안 받은 쥐꼬리만 한 번역료는 다 먹고사는 데 쓰고 밑천이라고 할 게 없었다.


그러면 어디 가서 몸 쓰는 일이라도 할까? 어우, 나는 몸 쓰는 거 딱 질색이다. 전형적인 와식생활자다. 밥 먹고 일할 때 빼면 주로 누워서 산다. 소파에, 침대에, 방바닥에 껌딱지처럼 착 달라붙어 있는 게 기본자세다. 그렇다고 힘이 센 것도 아니고 운동 신경이 좋은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은 뭐든 옛날부터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까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배운 게 번역질이라고 번역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인간이었다. 쯔쯧, 삼십 대면 아직 젊어서 뭐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나인데 너무 나약한 소리 아니냐고?


맞다. 나약하다. 나는 나약한 인간이다.


그래서 앉아서 손가락만 까딱거리면 되고, 기 센 사람들과 씨름할 필요도, 높은 사람 비위 맞추려고 솟구치는 분노를 씹어 삼킬 필요도 없고, 남이 만든 스케줄에 나를 끼워 맞출 필요도 없는, 나약한 인간이 방구석에서 혼자 할 수 있는 번역이 내게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니 답은 존버(X나게 버틴다)뿐이었다. 다른 일을 할 수 있는데 번역만 고집한 게 아니라 다른 일을 할 수 없으니까 번역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는 말은 양심상 못 하겠다.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책이나 읽고 영화나 보러 다니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때는 아직 총각이었으니까 통장에 있는 돈 대충 까먹고 살아도 지장이 없었다.


출판사에 적극적으로 책을 달라고 요청하진 않았다. 에이전시를 끼고 일하기 때문에 그렇게 연락할 만한 출판사도 없었고 그럴 주변머리도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이 이야기의 결말은 시시하다. 조금 더 기다렸더니 다시 일이 들어왔다. 전에 같이 작업했던 출판사에서 의뢰가 들어왔다.


이후로 나는 햇수로 12년째 번역 중이다. 그동안 일 없이 노는 시기가 종종 있긴 했지만 어쨌든 여태 번역계에서 안 밀려나고 살아남았다.


그래서 무조건 버티면 좋은 날이 온다는 말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어린 나이에 번역계에 입문해 일이 좀 끊겨도 배곯을 처자식이 없었고, 에이전시 설립 초기에 적극적으로 신인 번역가를 양성하던 시기에 들어와 일찌감치 에이전시 내에서 입지를 다진 덕분에 간혹 일이 끊길 때는 있어도 비교적 일감이 잘 들어왔다.


그런 주제에 다른 사람에게 힘들어도 버티라고는 말 못 하겠다. 어쩌면 일찍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는 게 장기적으로 보면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다만 나처럼 달리 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별수 없이 그 힘든 시기를 버텨야만 할 텐데 그런 사람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아직 당신의 때가 오지 않았다는 뻔한 응원의 말뿐이다. 어차피 달리 믿을 구석이 없다면 자신을 믿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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