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B가 뭐예요?
이제 본격적으로 논문을 작성해야한다. 내가 연구하고 싶은 분야와 연구대상을 선정해야하는데 새내기 석사나부랭이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우선 관심사부터 찾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무엇을 연구하고 싶은걸까?
나의 관심사는 ‘외상경험’, ‘외상 후 성장’이었는데 그러니까 어떠한 상처를 경험한 사람들이 상처를 극복하고 더 나아가 성장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연구대상자를 선정해야하는데 어떤 사람들로 하는게 좋을까.
[도와줘요, 과제요정!]에서도 등장한 나의 소중한 첫 내담자, 친구는 현재 귀여운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반려인이다. 원래 동물을 무서워하는 편인데 어떠한 계기로 강아지를 보호하게 되었고 지금은 가족같이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다고 했다.
강아지 나이가 있다보니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것만 생각하면 벌써부터 눈물이나고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 된다고 토로한적이 있었다.
나 또한 고양이를 매우 사랑하는 애묘인으로서(아직은 랜선집사일뿐이지만), 그의 고민에 깊게 매료되었고, 펫로스(pet-loss) 증상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꾸준히 증가 하고 있기에 반려동물을 상실한 사람들의 심리적 문제 또한 증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연구대상자는 반려동물을 키우고 상실해본 경험이 있는 반려인들을 대상으로 정했다.
(마치 주제를 한번에 정한것 같지만 연구대상부터 변인들을 수도 없이 변경했던거 같다)
대략적인 틀은 잡았는데 문제는 지도교수님의 의견(의견이라기 보단 허락이라고 해야겠..)이다.
매주 월요일 늦은 저녁, 줌으로 지도교수님과 단체 랩미팅을 하는데 윗기수 선배들과 동기들이 참석한다.
서로의 연구주제를 공유하기도 하고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 교수님의 피드백을 들으며 간접적으로 배워가는게 많은 시간이었다. 나는 랩미팅에서 관심사를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는데 교수님의 표정이 알쏭달쏭했다. 임상적으로 혹은 상담적으로 의미 있는 주제일거 같긴하지만 참고할만한 선행연구의 여부와 연구대상의 선정 등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고 고려해볼 것을 피드백 하셨다.
그래도 연구주제와 방향에 대해서는 좋게봐주셔서 다행이었다. 이제 선행연구를 찾아 교수님께 최종적으로 말씀드리고 연구를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한다.
외상 후 성장에 대한 선행연구는 꽤 찾을 수 있었지만 연구대상자가 반려인으로 한정된 논문은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참고할 수 있는 국내학위논문, 국내학술지, 해외논문 등을 최대한 다양하게 찾았고 내가 진행할 연구에 참고할만한 사항을 한눈에 들어오도록 정리했다 (*논문정리 틀 출처: 네이버 블로그 논문쓰는 박사 김거북)
나는 옛날 사람이라 그런가(...) RISS(https://www.riss.kr), DBpia(https://www.dbpia.co.kr)에서 논문 찾아서 엑셀파일로 정리하는게 편했는데, 요즘은 *조테로(zotero)를 포함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인용과 참고문헌을 자동생성한다고 한다.
(*조테로 사용 및 활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영상을 참고하시면 도움될 듯 합니다.)
연구자를 위한 지식관리 워크플로우 끝판왕 (2025)|Zotero 7 × Obsidian × Pandoc × AI: 수집·연결→초안
무튼, 가내수공업마냥 논문 초록을 읽고 연구주제와변인, 사용한 통계프로그램, 결과, 참고문헌 등을 정리했고 교수님께 선행논문을 토대로 설명드려서 최종적으로 연구주제로 해도 좋다는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연구를 바로 시작할수있는게 아니라 IRB 심의를 통과해야한다고 한다. 네? IR..뭐요?
*IRB(Institutional Review Board)란,
기관생명윤리위원회로 임상시험을 포함한 사람 대상 연구가 윤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적절하게 설계되었는지 심사하는 독립된 기구이다(보통 각 학교에 자체적으로 IRB가 개설되어 있다).
- 인간대상연구, 인체유래물연구 등 윤리적, 과학적 타당성을 검토하여 연구 수행을 승인
- 승인 후 연구의 진행과정과 결과에 대한 조사 및 감독, 연구자 및 종사자 교육, 연구자 윤리지침 마련 등
나는 반려동물을 상실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양적연구를 진행할 예정이기에 IRB 심사를 받아야 했다. 이것도 우여곡절이 좀 있었는데 졸업학위논문에 IRB가 반드시 필수인가 여부는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학교측에 문의를 했는데 '본래 IRB에서 명시하는대로 사람 대상 연구니까 연구 승인받고 진행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IRB를 받지 않고 학위논문을 작성했다고해서 졸업을 못하는건가? 그건 또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완전히 확답할 수는 없다.' 는 다소 애매한 답변이었다.
그냥 정석대로 IRB 승인 받고 연구를 진행하면 되는데 왜 고민을 했냐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논문 심사일정까지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쯤 직장에서 업무가 늘어나기 시작한데다가 다음해에 인사이동이 불가피하여 어쩌면 정규 5학기에도 졸업을 못할 수도 있겠다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IRB없이 논문을 시작하느냐, 시간이 촉박해도 정석대로 연구를 진행하느냐의 기로에서 지도교수님은 당연히 IRB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결정하셨지만, 최대한 나의 상황을 고려하시는게 보이긴 했다.
결론은 IRB 승인을 받고 연구진행하는 정석적인 루트로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사실 당연한건데).
IRB 심의에 필요한 서류가 꽤나 많았지만(연구계획심의의뢰서, 연구상세요약서, 연구책임자 제출서류 등등등등) 어차피 논문을 작성하려면 연구계획서를 써야 했으므로 차분히 준비를 시작했다.
연구상세요약서가 논문의 축소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나았지만, 그럼에도 작성하는 내내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렸다. 선행연구에서 인용하는 문구들이 많은데도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걸리고 어려운 건지. 나중에 결과 통계분석을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했다.
'내가 정말 제대로 쓸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시험대체로 졸업한다고 할까?'
교수님께 논문을 포기하겠다고 말씀드리기도 어려웠고, 중도에 포기하는 것도 기분이 썩 좋을 것 같지 않았다. 흔들리는 갈대같은 마음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연구계획서를 작성했다.
심의날짜가 정해져있기에 작성된 연구계획서를 교수님께 급히 검토받았고, 기한에 맞춰 어찌저찌 제출을 완료했다.
심사받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긴장을 많이 했는데, 교수님께서 IRB를 한번에 통과하는게 쉽지않고 수정사항이 많을 수 있으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접수한 시점이 명절무렵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혹시나 연휴때문에 심사일정이 뒤로 많이 밀리지는 않을지 걱정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긴장되는 시간이 흐르고 IRB 심의 결과가 나왔는데 결과는!
야호 승인이다! 아니 근데 승인은 승인인데 조. 건. 부 요?
교수님이 예상(?)하신대로 수정사항이 있었는데 정말 간단한 수정사항이라 바로 추가하여 재심의 신청을 했다. 한번에 바로 통과되었으면 기분이 훨씬 좋았을텐데 그래도 수정사항이 이만하면 거의 없는 편이라고 하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논문 심사일정까지 시간이 더욱 촉박해져 마음이 조급했으나 엄연히 절차가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될놈은 된다는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근데 내가 안될놈이면 어쩌지), 선행논문 내용과 참고문헌을 꼼꼼히 정리하면서 최종 승인을 기다렸다.
그리고!
'너 연구해도 된다'는 승인을 받았다.
나는 연구해도 될놈이었나보다.
이제 안쓰고 싶어도 빼도박도 못한다. 무조건 쓰는거다. 연구해도 될놈이니까 해야한다.
(박사 논문 쓰신분들은 대체 어떤 길을 걸어오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