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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Jul 08. 2022

유희열씨는 아마도

경로 의존성의 법칙은 사람이 익숙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한다. 사람이란 본래 변화를 싫어하기 마련이다. 육체적으로 그리 강하지 못한 인간이라는 동물에게 변화라는 불확실성은 그 자체가 위협으로 작용하고 그래서 보통의 사회는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이 70%를 차지하게 된다. 인간은 하던대로 하는 것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물리학에서는 그것을 관성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관성을 스스로 깨야하는 순간들이 있다. 바로 그릇된 결과를 반복적으로 발생시키는 판단의 순간들이다. 인간이 맞닥뜨리는 다양한 순간들은 표면적으로는 다른 것처럼 보이나 본질적으로는 같은 상황인 경우가 많다. 그런 동종의 상황들에서 인간은 기존에 취했던 선택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문제는 그 선택이 올바른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따지지 않고 그것에 의존한다는데 있다. 사실 완전히 형편없는 결과를 가져온 선택보다 어느 정도의 문제 해결력을 가졌지만 미봉책에 불과하여 근본적인 해결이 안되는 선택이 오히려 더 위협적이다. 그러한 선택은 형편없는 선택과 달리 크게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에 큰 오류를 남기지 않으니 주변으로 부터 발견되기가 쉽지 않고 그래서 비판이나 수정의 대상이 되기도 어렵다. 완전히 그릇된 판단은 주변으로 신호를 발생시키기 마련이라 다른 사람으로부터 교정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새로운 해결책이 제시되지만 적당한 결과만을 만들어내는 선택의 반복은 후퇴를 쌓이게하고 그 작은 후퇴들이 조금씩 쌓이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퇴보로까지 성장하게 된다.


그래서 판단의 상황에서 무엇인가 미심쩍은 느낌이 들 때는 그것을 즉각적으로 수정하여 새로운 체계를 만들고 그래서 그릇된 판단에 관성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실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행동이어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를 수 밖에 없지만 제 때 그 관성을 깨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는 영원히 정상 궤도로 돌아오지 못하는 관성에 빠질지도 모른다. 더 큰 고통을 치르지 않기 위해서 인간은 때로 당장의 작은 고통을 나서서 취할 필요가 있다. 표절 논란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작곡가 유희열씨도 어느 순간 되돌아오지 못할 그릇된 관성에 빠져든 것이 아닌지 생각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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