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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Nov 12. 2023

피를 나눈 사람의 안정감

형제는 유전자를 공유한다. 같은 부모로부터 탄생한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데이터의 결정체다. 데이터의 다발이다. 그곳에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어떤 것을 생각하는 방식에 대하여, 그리고 가치관에 대하여 말해주는 씨앗이 담겨있다. 그래서 유사한 DNA를 가지고 있으면 비슷한 삶의 구석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하지만 어떤 한 개인에게는 당연한 것이 있다. 의사소통은 그 각자가 가진 당연함의 차이만큼 어려움을 가진다. 형제는 이 당연함이라는 전제를 공유하기에 뜻이 통한다. 내 말이 곡해될 우려가 적다. 의미가 전달되지 않을 확률도 낮다. 그것은 불확실성이 적은 것이다.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물론 때로는 형제가 남보다 더 이해 못 할 존재가 되기도 하지만 너무도 마음이 잘 맞는 누군가를 두고 '친형제 같다.'라고 표현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기본적으로 형제란 언어가 통하는 존재다.


시간은 무한히 주어지지 않는다. 의사소통에 필요한 시간도 마찬가지다. 언어가 다르면 서로의 입장이나 생각을 이해하기까지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각자의 언어가 함의하는 것의 다름으로 오해가 발생하고 그 오해를 지우기 위해 많은 소통을 해야 한다. 언어의 경제성이 떨어진다. 시간이 무한히 주어져도 좁혀지지 않을 것 같은 언어의 차이는 대화의 가능성을 떨어트린다.


피를 나눈 사람들과의 시간에서 위안을 얻는 것은 그런 안정감이다. 예상하지 못할 반응을 맞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나의 이야기가 온전히 상대방에게 흡수된다는 것. 흡수하지 못하는 상대의 언어가 없다는 것. 낭비되는 의사소통이 없다는 것. 그런 것. 경제적인 의사소통에 놓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소통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런 것들이다.


2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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