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 사생결단하는 삶.

100개의 글쓰기 41

by 김민성

타인과 경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온순한 성품이라거나 평화지향 적인 사람이라거나 해서가 아니다. 그냥 지는 것이 싫어서 그런다. 그렇다고 또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만큼 승부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는 경험도 싫고, 기를 쓰고 이길만한 승부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애초에 경쟁할 만한 일을 안 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에 승부근성이 강한 사람이 있으면 피곤해진다. 게다가 그 사람이 가족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내겐 세 살과 네 살 터울의 남동생과 그 아래 여동생이 있는데, 남동생이 승부욕 있는 편이다. 그러니까 형에게 치이고 동생에게 억울한 자신의 신세를 확실히 한탄할 줄 하는 ‘끼인 둘째’ 그 자체였다. 지금 생각하면 좀 불쌍하고 짠하지만, 뭐 그때야 피곤한 스타일이었다.


사람이 이미지가 중요한 것이, 어머니는 큰아들이 착실하다고 확실히 믿고 계셨다. 덕분에 난 당시 금기와 같았던 컴퓨터 오락실에 별문제 없이 드나들 수 있었다. ‘우리 큰아들은 절대로 그런 곳에 가지 않을 것’이라는 어머니의 확실한 믿음과는 달리, 벽돌깨기-화성탐사-너구리-갤러그 같은 게임들을 꽤 일찍 접했다.

내가 그렇게 오락실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남동생도 날 따라 오락실에 다니게 되었다. 당시 내가 빠져있던 게임은 ‘레전더리 윙’이라는 게임이었다. 천사가 나와서 총을 쏘는 슈팅 게임이었다. 거기 빠진 덕분에 어머니께서 빼닫이 두 번째 칸에 넣어 두셨던 동전들을 몰래 가져다가 충실히 오락실에 진상했었다.


그렇다 해도 사실 난 뭔가에 오래 관심을 두는 법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락실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대신 어머니께서 통 크게 질러주신 금성 세계문학전집에 꽂혀 밖을 안나가게 되었다. 파우스트, 달과 6펜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데미안, 노인과 바다, 동물농장... 이런 거 그때 읽은 덕분에 중고등학교에 가서 문학소년 흉내 내는데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 어릴 때 저런 걸 읽고 시건방져져서 성인이 되어 진짜 읽어야 할 때 안 읽게 되는 건 안 자랑이다.

내가 그러고 있을 때, 남동생이 자꾸 밖으로 사라지고 있음을 그때는 몰랐다.


하루는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 남동생이 집에 돌아오지를 않았다. 어머니께서 동생 찾아오라셔서 읽던 책을 던져놓고 귀찮음과 짜증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붉은 하늘을 저 앞에 두고, 집 골목에서 나와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럴 때는 유독 발자국 소리도 짜증이 가득 담겨 ‘터벅터벅’ 소리가 난다. 저 앞에 홍교다리를 끼고 다시 왼쪽으로 돌아 중앙약국을 지나 좀 더 가면 미용실 옆에 ‘컴퓨터 오락실’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남자아이들의 땀냄새와 커다란 브라운관이 내뿜는 특유의 열기가 훅하고 덮쳐왔다.


한 명이 게임을 하면, 그 뒤에 3-4명이 구경하는 것이 인지상정. 그러니 오락실은 늘 북적북적했다. 또래 아이들과 형들을 뚫고 오락실을 한 바퀴 돌다가 익숙한 뒤통수가 눈에 보였다. 귀가 새빨갛게 되어 씩씩거리는 9살짜리 남동생 민기가 거기에 있었다. 다가가서 쟤가 왜 저렇게 씩씩거리나 지켜봤다. 사실 간단했다.
분명 집에 굴러다니는 동전을 주워서 신나게 오락실에 왔겠지.

그리고는 남들이 게임하는 것을 한참 구경했을 거다. 끽해야 100-200원 있었을 거고, 50원에 한판인 오락 오래 즐기려면 선택과 집중에 최선을 다해야 하니까…

그렇게 한참을 구경한 후 돈을 바꾸고 드디어 지 하고 싶은 오락기 앞에 앉아 동전 집어넣고 게임 시작했겠지.
그리고 게임이 자기 생각대로 안 풀리니 짜증과 화가 나기 시작했던 거다.


재미있자고 하는 게임인데, 저렇게 짜증과 억울함과 분노에 차서 오락기에 붙어 있는 동생을 보니 깊은 한숨이 튀어나왔다. 쌍가마가 예쁘게 자리 잡은 동그란 뒤통수를 한 대 때릴까 고민하는 찰나 애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임병하네. 이라고 오른쪽으로 움직였는데 왜 오른쪽으로 안가냐고오! 그라고 나는 총 쐈는디 왜 안나가냐고오!! 으허으흥!!!”


빨간 공이 달린 조이스틱을 오른쪽으로 달캉달캉 치고, 총알 나가는 버튼을 탁탁 치면서 울분을 토하는 9살짜리를 보는 12살 형은 웃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기괴한 기분으로 잠시 서 있었다. 그리고 어금니를 꽉 깨물고 최대한 부드럽게 남동생을 불렀다.


“뮌기야.... 뭐허냐?”

“형가야. 봐봐. (훌쩍) 내가 이거슬 막 오른쪽으로 갔거든? (크흡)그란디 오른쪽으로 안가브냐!! (훌쩍)그라고 빨간거시 나옹께 (스읍)막 총 쐈는디 안나가븡께 막 주거브렀다고오…(훌쩍)”

그 날 남동생은 어머니께 마당 쓰는 빗찌락으로 맞았던 걸로 기억한다. 밥시간이 되었는데도 안 들어온다고…

그 후로도 녀석은 꾸준히 오락실에 출입했고, 게임도 나보다 더 잘했었다. 지금도 잘 하고…

사생결단!
무언가 끝까지 좋아하고 승부를 내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부럽다는 느낌을 받는다. 요즘 내가 말이 되든 안되든 하루에 몇 줄이라도 써보려고 바둥거리는 것도 그래서다.
새 책이 나온 아내가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언젠가는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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