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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May 14. 2024

존재

내 안의 감정 읽기

지난주, 나는 글쓰기에 전념한다는 핑계로 잠시 미뤄두었던 작년부터 듣던 인문학 수업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매일 짧은 논어를 필사하고 주 1회씩 만나 동서양의 철학과 인문학을 연구하시는 선생님을 필두로 공부를 하는 수업.

작년에는 사실 같이 듣자 하니 들었고, 정말 좋은 수업은 맞지만 내게는 우선순위 뒤쪽으로 밀려버리고 말았던 수업에 다시 가게 된 계기는 '니체' 때문이었다.

최근 읽은 은유 작가님의 [쓰기의 말들]에서 작가님이 니체에 감명받고 필명을 은유라고 즉흥적으로 지었다는 걸 알게 되고, 니체의 사상에 대한 감탄을 유려한 글솜씨로 풀어낸 글들을 보며 니체의 사상이 대체 무엇이길래.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같이 독서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하는 동생은 인문학 수업의 주축 멤버였는데, 인문학 수업에서 마침 니체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며 수업 내용에 대해 들려주기 시작했다.

나는 금세 매료 되었다.

올해는 승부를 봐야지. 하는 일도 일터가 생기며 조금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고 내 두 귀는 코끼리처럼 크게 팔랑거렸다.

그렇게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니체에 대한 기대를 가득 안고 다시 참여한 올해 첫 수업.

격하게 나를 반겨주시고 기억해 주신 선생님 덕에 고양된 기분으로 들었기 때문일까.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며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강한 충격을 받았다.

지눌의 돈오점수 사상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데, 나의 존재 자체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너를 믿고 정진하라. 지금 여기의 삶이 부처의 삶이다. ]

 대목부터 내 안의 깊은 심연에 잔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존재자는 며느리, 엄마, 아내, 인기 작가 같은 사회적으로 주어진 역할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그것은 그저 이름 일뿐.

우리 자신이 '존재' 하는 것 자체가 성스럽다는 설명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누군가 내게 네 존재가 중요하다고 말해준 적이 있었던가. 심지어 나를 낳고 길러준 부모님 마저 해주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덧붙여 내가 곧 부처다라는 의미는 모든 것이 평화롭고 행복한 상황이라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번뇌와 갈등은 당연한 것이라고.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고 존재 자체가 중요하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나의 마음 깊은 곳의 무언가 탁 건드려졌다.

자잘한 번민과 고민에 집중하기보단 존재의 화두를 진지하게 찾아봐야 한다는 말씀에 수업을 마치고도 내 안에 여운이 가득 맴돌았다.


필기한 노트를 들고 다니며 처음으로 나는 나의 '존재'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동시에 나는 각각의 역할들을 잘 해내려고 아등바등했는데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에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해졌다.

그래. 나는 어쩌면 누군가에게 보일 내 모습, 존재자로서 얼마나 잘 행하는지에 너무 집중해서 삶이 이렇게 버거웠던 것이 아닐까.-

더불어 아이들과 매일 부딪히면서 내가 잘못된 엄마가 아닐까, 내가 불완전한 인간이라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닐까 하며 불안함에 보내던 날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 역할들을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파묻혀 자유롭지 못했다.

내가 존재하는 데도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 느낌, 생각 들이 왜 존재하는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이유.

그건 내 존재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태어났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래서 불안했고, 아이를 낳고는 더 불안해져 잘해보려 발버둥 치던 나날들.


그 안에 내가 노력한 건 존재자로서 잘해보려는 노력일 뿐 내가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은 쏙 빼놓은 채 엉뚱한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는 생각.


이러한 존재에 대한 인식과 깨달음이 선이 굵직한 물음표로 내 안에 둥둥 떠다녔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진다거나 하진 않겠지만,

'존재' 그 자체로만 나를 인식하는 것은 생경한 경험이자 내 안에 못다 핀 꽃 같은 느낌이다.


처음 자신의 앞에 꼬물거리는 주먹을 발견하는 갓난아기처럼 나는 왠지 그런 기분이 지금의 기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존재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기로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존재의 고민.

나 스스로를 인식하고 존재를 인지하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 수 있을까. 그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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