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구름 Apr 08. 2024

아이의 지각을 바라보는 나의 자세.

내 감정읽기

생존수영을 시작한 3학년.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같이 이동해서 수영장에 가야 하기에 평소보다 20분 일찍 등교를 해야 한다.

어제 땡볕에서 아빠 마라톤 응원을 하고 저녁 막창집 뒤풀이까지 같이 갔다가 집에 돌아온 시간이 거의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라 피곤할 법도 다는 걸 이해하지만 굳이 굳이 시리얼을 먹고 가겠다는 아이와 실랑이, 날 선 말들이 오가고 20분까지 교실에 도착해야 하는데 20분에 나서는 모습을 보는 내 속은 화가 나서 문드러진다.

학교가 코앞이고 등교하는 게 보여서 가장 꼭대기층인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니 나름 뜀박질을 하는 아이를 보 답답해서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너네 언니는 대체 왜 저럴까?

아직 등원하지 않은 둘째를 붙잡고 하소연을 해본다.

그러면서 나는 유독 왜 아이가 지각할 것 같으면

참는 게 힘들까?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도 생각이란 게 있으니 잘 알아서 하겠지.

사실 입을 대지 않으면 혼자 잘 가는데 내가 입을 대기 시작하면 반발심과 짜증을 부리며 늦어지는 역효과를 알면서도 화가 스멀스멀 피어올라 결국 입 밖으로 분출해 버린다.

나는 유독 왜 지각하는 아이를 못 참겠는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사실 학창 시절에 프로지각러였다.

늘 여유 있다고 착각하다 시간이 다 되어서야 헐레벌떡 뛰어나간다.

초, 중은 가까워서 그나마 뛰면 커버가 되는 거리였는데 고등학교는 거리가 멀어졌고 또 코스가 애매해서 버스나 지하철 없이 걸어가야 하는 거리였다.

그래서 늘 지각을 많이 했다. 물론 그때 마이마이, 카세트테이프로 듣던 플라이투 더스카이 노래는 지금 들어도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아주 좋은 매개체이자 기억이지만 어찌 됐건 나는 늘 지각하는 아이였다.

대학교는 더 멀어져서 버스 종점에서 종점까지 가야 하는 긴 여정이었다. 왕복 3시간 반에서 4시간 사이.

그래서 꼭 타야 하는 시간의 버스를 놓치면 수업시간 한 시간 포기는 조건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학교 뿐 아니라 직장생활이나 친구 약속에서도 시간 맞춰 나가는 것이 내게는 큰 과제이자 숙제였다.

지금은 아이를 픽업 간다거나 유치원 차를 기다린다거나 하는 것들은 절대 늦으면 안 되는 일이다 보니 전보다는 훨씬 시간 약속을 지키려 노력한다. 또한 상대방과, 또는 수업을 시작하기로 약속한 시간을 지키는 것이 예의이자 기본이라는 것을 이제 알기에 최대한 늦지 않도록 노력한다.

이런 나는 왜 아이의 지각을 보는 것이 힘들까?  

나 역시 프로지각러로써 많이 겪어보았다.

늦게 들어갔을 때의 민망함, 성실하게 보이지 않는 선입견 같은 것들이 알게 모르게 내 이미지로 굳혀진다는 것을 나는 긴 세월 동안 몸소 겪어왔다.

 나는 내 아이만은 그런 상황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아이에게 그대로 투영시킨 것이 아닐까 추측을 해보았다.

그래서 차분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나는 지레 지각생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조바심 내며 아이를 닦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믿어주지 않는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했었는데 결국 지각을 하고 나면 '봐라 결국 지각했잖아' 하며 아이를 비난하기 바빴다.

혼자 하는 힘을 좀 더 믿어주고 용기를 북돋아 성공의 기회를 늘려줘야 하는 게 맞는 것인데 나는 내 기억과 경험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이가 나처럼 친구들한테 자주 지각하는 아이라고 놀림받을 때마다 마음 아플 것을 미리 걱정해 불안해진 것이다.

아이와 나는 다른 존재인데 나는 왜 그렇게까지 불안 해졌던 걸까?

아마 내가 못난 점이라 생각했지만 일찍 고치지 못한 습관을 아이가 그대로 답습한다고 생각하자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그걸 인식하고 나자 이런 방법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릴 때 바쁜 맞벌이 부모밑에서 그런 세심한 감정에 대한 코치를 받지 못했지만, 지금 나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황이니까.

지각이라는 습관을 타파하기 위해 우리는 대립해야 할 상대가 아니고 협력해야 할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이 습관을 고쳐나갈 수 있을까.

나는 나의 이 불안으로 아이를 쥐락펴락 하려고 하지 말고 아이를 존중하고 아이와 함께 충분한 대화를 통해 같이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 행동에 대한 의미를 내게서 찾고 아이를 바라보니 나는 한결 맘이 편해졌다.

그래 역시 아이의 감정 읽기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결국 양육태도를 결정하는 엄마인 나의 감정을 자세히 잘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단 결론까지 내렸다.

자, 이제 극복해 보자.

평생 전우여.


이전 05화 버릇: 나 스스로를 의심하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