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통

일상의 사유

by 꽃구름

첫째가 올해 3월부터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유치원 차가 8시 30분에 오니 집 앞 어린이집에 걸어서 10시쯤 여유 있게 가던 것 과는 천지차이인 아침 일상이 시작되었다.


오늘도 첫째 유치원 차에 빠빠이를 하고 둘째 유모차를 태워 돌아오는 길, 비슷한 시간대에 마주치는 할머니를 만났다. 노인복지센터라는 문구가 붙은 승용차가 할머니를 모시러 오는데 아이 등원하는 시간과 그 시간이 항상 같아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던, 차만 보던, 오늘처럼 아파트 계단 옆 경사로에서 누구 한 명을 기다려야 하듯 늘 할머니와 할머니를 모시러 온 중년의 아저씨를 만나게 된다. 할머니는 휠체어에 내 아이는 유모차에 타고 있어서 오늘 같이 경사로에서 마주치면 누가 먼저 온 지에 따라 한쪽이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우리가 조금 늦었다. 내가 아파트 앞에 도착하니 할머니는 벌써 경사로를 타고 내려오시는 길이었다. 경사로 끝에서 나의 아이를 마주친 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아 작은 아이를 향해 마스크 너머로 웃으시며 그렇게 지나가셨다.


휠체어와 유모차. 다른 듯하면서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도 할머니도 자신의 발 대신 바퀴가 굴러가 대신 일을 해준다. 그 돌아가는 바퀴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어쩌면 태초에 태어났던 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말이다.


아이와 어르신은 비슷한 면이 꽤 많다. 걸음이 느리고, 누군가 도와주어야 하며 돌봐주어야 한다. 나이를 먹으면 아이가 된다는 말처럼 더 고집스러워지고,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어르신들이 있는 것처럼 아이는 커갈수록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꼭 하고야 마는 고집스러운 면이 있다는 게 비슷하다. (물론 모두를 일반화하는 것이 아니며 그런 말이 있다는 것이다.)


인생이 저물어 가는 석양 같은 시기에 우리는 태초에 태어났던 그 모습대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하지만 관찰하다 보니 다른 점은 분명 하나 있었다. 바로 체통. 그것이 아이와 어른의 다른 점이다.

아이는 좋으면 까르르 웃고, 행복하고 재미있어도 까르르 넘어가게 웃는다. 슬프고 힘들면 울고 배고프고 불편해도 무슨 일이라도 난 듯 큰소리로 울어댄다.


하지만 휠체어를 타고 가는 할머니는 옷깃을 잘 여밀 뿐, 아이가 있으면 너무 귀여워 함박웃음을 지으시긴 하지만 아이가 눈앞에서 사라지면 다시 말없이 휠체어에 몸을 맡긴다. 이미 사회화가 완료된 어른들은 어쨌거나 체통이란 걸 지켜야 하는 입장이니 까르르 웃거나 슬퍼서 울기에는 남들 눈치가 너무 보인다.


나는 아직 노년을 경험할 나이는 아니지만 만약 우리가 태초에 태어난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성질이 있다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아마 아이처럼 웃고, 울고 감정을 남들에게 피해 입히지 않는 선에서 쏟아내듯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어른도 슬플 때 엉엉 울고 나면 편해지듯이 감정을 꾹꾹 담아두기보단 내 감정을 이해하고 확실히 표현하는 것만큼 행복한 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른이 누군가에게 자기감정대로 화내고 윽박지르고 감정의 쓰레기를 남한테 버리는 것은 사회 일원의 한 사람으로서 절대 지양해야 할 일이지만 말이다.


아이처럼 웃고, 행복해하고, 슬프고, 힘들어하는 것 말이다.

사방이 거울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데, 나의 작은 몸짓에도 행복한 듯 까르르 함박웃음을 짓는 둘째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이 예쁜 아기처럼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며 살아야겠다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찬사.



"우어 우어 우어" 지나가는 개미를 보며 너는 놀라워한다.

개미는 어떻게 움직일까? 개미는 무얼 하고 있지?

나는 금방 이론적인 것들을 떠올리고 있다. 하지만 너는 아니다.

그저 개미의 움직임을, 개미의 모습 자체를 느낀다.


나뭇잎의 푸르름을 지나치지 못해 손끝을 갖다 댄다.

스윽스윽 나뭇잎을 훑어댄다.

너는 그저 나뭇잎의 질감을 느낀다.


하늘에 동그랗게 떠있는 달을 보며 너는 또 "우어 우어 우어" 한다.

오늘이 음력 보름이던가? 며칠이지?

엄마는 달빛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 하지만 너는 아니다.

반짝이며 빛을 내는 달빛을 너의 눈에 담는다. 너의 맑은 하얗고 까만 눈동자에 달빛을 담아간다.


나는 너를 키우며 몇 번이고 찬사를 보낸다.

너를 동경하며 찬사를 보낸다.

네가 너무 예뻐서, 네가 너무 맑아서.

엄마는 그런 네가 너무 빛나서 너에게 찬사를 보낸다.

너는 그런 아이다.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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