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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업 Sep 26. 2024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사과를?

가족 관계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

내가 회사에 입사해서 처음 만난 상사는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대머리 아저씨였다.




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나에게


입사 첫날부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것도 매일매일.




"신규! 앉아봐!"


"시집살이 3년이란 말이 있어.


벙어리, 눈 뜬 장님, 귀머거리로 3년을 보낸단 말이지.


회사생활도 마찬가지.


요새 입사한 애들 스펙 좋지, 인물 좋지, 다 좋아~


근데 처음부터 아는 체하고 입바른 소리 하는 건


회사 분위기 파악 하기 전엔 위험한 거야."



"알겠나? 선배님들 하는 거 유심히 보고 배워~"








내 귀에 염불같이 들렸던


시집살이 3년이란 말에 세뇌되었던 걸까?





나는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시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지 않았다.

(대머리 아저씨 예측 잘하시네...)

(시집살이 제대로 하는 중)




오히려 내가 마음먹은 대로,


시집살이 3년 내에


시댁을 변화시켜 보겠다는 마음 하나로


시댁의 요구에 다 맞췄다.


아니, 어쩌면 한술 더 떴는지도.












내가 출산을 하고


남편은 회사 발령으로 정신이 없었다.


시아버지 생신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혼자 아이를 데리고 시댁에서 자고,


아버님 생신 축하도 해드,


007 미션보다 더 긴장되는 일을


스스로 해보겠노라 자처했다.

(응?!!)




어차피 우리 집에 있어도 시댁 안전지대는 아니었고


언제든 방문과 연락이 자유로운 상황.




이제 순응하는 건 무의미해 보였다.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오히려 내가 시댁에 먼저 찾아가는


적과의 동침(?) 전략으로 방향을 바보았다.

(찾아가는 서비스 ^ㅗ^)

(나는야 전략가)









나의 계획은 성공했다.


나에게 시부모님은 계속 고마움을 표현하셨다.

(오케바뤼! 걸려들었어!)





 하룻밤을 자고 음날 아침이 되었다.


무념무상한 나에게


어머님이 뒤통수에다 대고 한마디 하신다.


"글로업아... 고맙다. 내가 원래 말을 예쁘게 못 해서..."

(알긴 아셨군요?)

(근데... 갑분 사과 무엇?!)



미안하다는 말이 빠진 사과를 받은 나는


당황스럽지만 기쁘고,


기쁘지만 낯설었다.




마치 불량식품만 먹다가


갑자기 몸에 좋다는 야채들을


맛의 조화관계없이 


한 번에 믹서에 갈아 마신 느낌이랄까.


(우웩)









어머님은 마음이 제대로 동했는지,


시댁에 있는 물건은  네 거라며

(무슨 논리이신지....?)


맘에 드는 걸 다 가져가도 좋다고 하셨다.

(주신다고 해도 확고한 취향차이로

가지고 싶은 물건이 없음 주의 ^-^)



화장품도 가져가라


명품 옷도 가져가라

(갑자기 사노비가 양반대접받는 모먼트인가)


(쿨럭)




내 삶에 사랑의 광명이 비친다. 어둠속에 살면서 그렇게 바라던 빛을 봤는데 눈을 뜰 수가 없네. (후비적)




내가 아무 옷도 집어 들지 않자, 


어머님은 친히 옷들을 꺼내 손에 쥐어주셨다.


"입어봐~ 우리 며느리한테 잘 어울리겠다."

(......)





나는 색함에 몸이 굳어버렸다.


옷을 입어보라는 이야기에


입어보긴 하면서도


고릴라가 처음으로 옷이란 것을 본 것처럼


어그적 어그적 어색한 옷 입기를 시도할 뿐이다.










그래도 나의 진심이 통했던 걸까?


그날 이후로도 계속


어머님은 나만 보면 칭찬을 쏟아 놓으셨고,


반찬도 정성껏 만들어주셨다.




그런 호의가 꾸준히 이어져도,


연락과 방문 서비스는 여전했고,


안타깝지만, 학습된 공포 때문에


그 진심을 오히려 내가 받아들이지 못할 때도 있었다.




"갑자기 어머님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


마음속엔 의심이 늘 따라다녔다.









다행히 큰 이변은 없었,


그 사이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둘째 임신.







어머님은 입덧이 심한 며느리가 푹 쉬어야 한다며


큰애를 시댁에서 2주가량 봐주시기도 했다.

(큰애는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았다.)

(시댁에서 애기 어린이집 너무 빨리 보내면 안 된다고)

(시부모님, 시이모부부 총 네 분이 나에게 전화하셨었다.)




임신 중에 내가 힘들어서 널브러져 있을 때,


우리 집에 오셔서 이것저것 챙겨주고


음식까지 해주고 가셨다.




이런 시간이 조금씩 쌓여갔다.


나의 마음도 어머님 마음의 진심을 보기 시작한 걸까?


우리 집에서 이것저것 챙겨주시고


딸네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타러 걸어가시는 어머님의 뒷모습에서


친정엄마의 따듯함 비슷한 게 느껴졌다.

(따듯함까진 모르겠고 그 비슷한 느낌)

ㅎㅎ



어머님 가시는 모습을 창밖으로 멍하니 바라보다


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놀라


고인 눈물을 옷소매에 닦고


다시 환하게 웃으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나의 고부갈등은 끝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시댁의 횡포에 


불안함이 가득한 나는


나의 삶의 방향을 바꿀 새로운 전략을 계획한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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