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전쟁의 시작
"산모님, 출혈량이 너무 많아
1시간가량 분만실에서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출산을 마친 나.
정신이 혼미 해질 정도로
온 우주의 기운을 단전에 모아 출산을 했는데,
출혈량이 많다니...
수혈을 해야 할 수도 있다니...
믿기 힘든 현실이었다.
새벽시간 출산이라
남편도 옆에서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고 있다.
병든 닭이냐고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내 모습이 더 추할 걸 알기에,
뇌를 거치지 않고 장에서부터 올라오던 말을
뇌 쪽으로 우회시켜서 목구멍 뒤로 넘겨본다.
(꾸웨엑)
그렇게 1시간이 흘렀고, 기다리던 의사 선생님이 등장했다.
"출혈량 잡히셨으니 이제 병실로 올라가서 안정 취하실게요."
"네에-"
(말 잘 듣는 편^^)
새벽 출산을 하고 나니 우리 부부는 기진맥진했고,
병실에 올라가자마자 쏟아지는 햇살을 블라인드로 가리며 잠을 청했다.
(똑똑똑!!!)
(노크 소리)
블라인드로 가렸던 햇살이
내 얼굴에 그릴 자국처럼 쏟아졌다.
그 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잠을 자던 우리 부부.
노크소리에 토끼눈이 되어 일어나며 입가에 새어 나오는 침을 옷소매로 닦았다.
(초췌.. 피곤...)
"산모님 아침식사 나왔습니다."
출산의 여파로 속이 울렁거려서 밥이 넘어가지를 않았다.
똑똑똑!!!
(이건 또 뭐다냐...)
"산모님~~ 모자동실 시간입니다~"
양수에 퉁퉁 부은 아기가 병실로 들어왔다.
쉬고 싶은데 쉴 수가 없다.
이제 고작 출산한 지 3시간이 지났는데,
모자동실에 모유수유에 회음부 체크에
각가지 일이 나를 괴롭힌다.
아..... 쉬고 싶다.
그렇게 하루, 이틀.
쉬려는 자와 쉬지 못하는 상황의 전쟁이 계속되고,
정신을 차릴 무렵, 출산 후 체크리스트가 떠올랐다.
"출생신고"
휴.....
귀찮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출산하면 그냥 조리원 천국이라 불리는 파라다이스에서
마음껏 쉬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찌어찌 출생신고를 하고,
두 번째 체크리스트를 확인했다.
"어린이집 대기 걸기!"
?!!!
출산하자마자 어린이집 대기를 거는 나쁜 엄마라니.
모성애는 1도 없는 엄마 같았다.
며칠을 망설였다.
이제 태어난 아이를 어린이집 대기를 걸어서 뭐 하나...
나중에 해도 되겠지?
그러다 문득, 회사에 나갈 나의 미래의 모습과,
양가 도움을 받지 못하고 육아를 해내야 하는 우리 부부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쁜 엄마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어린이집 대기 사이트에 접속을 해서
평이 좋은 어린이집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
이게 머선 129....
어린이집 전체 대기자 수가 어마어마하다.
혹시나 해서 아이를 등록하고 연령별 대기자 수를 보아도
이미 100번대다.
(누가 대한민국 저출산 국가랬나....)
(정작 내가 보내고 싶은 어린이집은
저출산의 분위기를 1도 느낄 수 없는 걸....)
어린이집 법정인원은
만 0세 반: 3명
만 1세 반: 5명
만 2세 반: 7명으로 매우 적은데....
100번대.......
100번대라니!!!!!!!
이게 말이 되냐고요 ㅠㅠ
어린이집 보낼 생각을 해서 나쁜 엄마가 아니고...
늑장대응을 해서 어린이집 대기 순번을 뒷번호를 받게 된 나쁜 엄마가 되었다.
내 아이는 내 손으로 키우는 게 제일 좋다지만,
맞벌이 부부의 현실은 그걸 감당하기가 어려웠고,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현실에 놓인 건지
모두 다 같은 방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또륵)
이렇게 부모가 된 순간 또 하나의 대한민국의 육아 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