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5일/ 슬픔의 불 가운데

# 노인의 슬픔은 존중되어야 한다.

by 글탐가
무슨 말을 하리오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해 이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요 12:27~29)
죄와 슬픔과 고난은 항상 존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것들을 실수로 허락하셨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고난은 내게 '자아'를 찾게 하든지 '자아'를 파괴합니다. 당신은 성공 속에서 자아를 발견할 수 없고 오히려 이성을 잃습니다. 단조로운 삶 속에서도 자아를 발견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평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는 슬픔의 불 가운데 있을 때입니다.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슬픔의 불을 지나지 않은 사람들은 남을 멸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당신을 위해 내어 줄 시간이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슬픔의 불을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다른 사람의 영적 성장을 위한 영양분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이제 내 나이를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거 같아. 이틀 동안 침대에 꼼짝 않고 누워서 내가 내린 결론이야."


팔십이라는 나이를 코 앞에 둔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깜짝 놀랐다.


"으음? 지금에서야 나이를 인정하신다고?"


얼마 전 어머니는 밤에 주무시다가 아버지의 신음을 듣고 서둘러 가시다가 넘어지셨다.

발등이 부러지고, 꼬리뼈가 금이 갔다.

병원에서는 입원명령이 내려졌고, 팔십 평생 처음으로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셨다.


팔십이 다 되도록 병원에 입원 한번 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랐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어머니는 당신의 몸을 잘 관리하시는 분이셨다.

조심성도 많으셔서 코로나 걸렸을 때 움직이지도 않으셨고

자식들 걱정하게 하면 안된다면 매일 동네를 육천보 이상은 꼭 걸으려 노력하셨다.


어머니는 원래부터 건장 체질을 아니셨다.

하지만 건장 체질이 아니다 보니 늘 몸을 아끼셨다.

그래서 건강 체질이셨던 아버지보다 지금은 훨씬 더 건장하게 잘 사셨다.

아버님이 신장투석 중이라 늘 긴장하며 아버님을 돌보시던 어머니는 그 사건이 있던 날 밤도

아버님의 신음을 듣고 놀라 달려가다가 그렇게 다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머니에게 특별한 휴가를 주신 것이다. 쉬셔야 한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2주 동안 입원하셨고, 아직도 꼬리뼈가 다 붙지 않으시고, 또 발에 통깁스를 하신 상태여서

우리 집으로 모셨다. 아버님은 심장 수치가 안 좋아서 계속 입원 중이시다.

부모님이 다 아프시니 심란할 만한도 한데, 놀랍게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평강을 허락하셨다.

그저 감사하다.


꼬리뼈가 빨리 붙도록 계속 누워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 집에 오신 날부터 이틀 동안

어머니가 생각의 정리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이제 당신의 나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눈이 슬퍼 보였다.


요즘 시부모님을 보면서, 나이를 먹는 슬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본다.

다른 슬픔은 빨리 지나가는 것이 많지만 나이를 먹는 슬픔은 죽는 날까지 더해지는 것이리라.

그래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슬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요즘 시부모님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마음껏 내쉬던 호흡이 가빠지는 나이.

팔다리가 쑤셔 움직이는 것이 고달픈 나이,

뼈가 쇠잔해져 약한 부딪침과 넘어짐에도 뼈가 부러지는 나이.

어쩔 수 없이 자식에게 기대어 자존심이 무너지는 나이.

베인 상처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잘 아물지 않는 나이.


나이만으로 서글퍼지고 슬퍼지는 그때를 나는 아직은 맞이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곧 맞으리라.

누구나!

노인의 슬픔은 존중되어야 한다.

노인의 인생은 칭찬받아야 한다.

그 자체가 수많은 슬픔의 불을 지나쳐 온 인생이기에

고단하고 힘들었던 인생을 잘 견뎌온 그 인생에게 박수를 보내야 한다.


"고맙습니다. 당신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있습니다."


얼마나 오랜만에 해 보는 고백인가!

부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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