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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탐가 Jul 16. 2022

이 고추는 진짜 고추맛이 난다?!

이해의 기술#2. 아버지의 청춘의 맛

"이야아~ 이 고추는 진짜 고추맛이 난다."


시아버님이 아침을 드시다 말고, 감탄사를 연발하시며 말씀하셨다.


'으음? 고추에서 진짜 고추맛이 난다고?'


시아버님이 맛있게 드시는 이 고추는 교회에서 가져온 아주 연한 고추였다.

교회 집사님이 강원도 본가에서 직접 따온 거라며 교회 식구들에게 나눠준 고추를

상위에 올렸는데, 우리 아버님이 드시고 입맛이 도는 듯 신나서 하신 말씀이었다.


요즘 신장 혈액 투석을 하시느라 앙상한 뼈밖에 남지 않은 아버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더 귀를 쫑긋 세우게 됐다.


"아버지, 진짜 고추맛이 뭐예요?"


진심, 궁금해서 여쭤봤더니


"진짜, 고추맛, 몰라? 진짜 고추맛이 난다니까!"


진짜 고추맛을 딱히 설명할 길이 없으신 듯 진짜 고추맛만 연속 강조하셨다.


'아~ 진짜 고추맛이란 게 뭘까?'


평상시에 고추를 즐겨 먹지 않는 나는 진짜 고추맛을 알기 위해 고추를 덥석 집어 들었다.


"와삭~"


일단, 너무 싱싱했다.

꼭지까지 푸릇푸릇한 신선함이 고추 날것 그대로의 맛에 그대로 전달돼서 고추에서 청량감이

전달됐다. 그리고 적당히 매워서, 생으로 먹는 데 몇 개를 먹어도 부담이 되지 않았다.

으음~ 그리고 씹을수록 단맛이 났다.


'으음? 이게 진짜 고추맛인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버지님이 말씀하시는 진짜 고추맛의 비밀은 무엇일까?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먼저, 아버님은 지난한 병과 사투를 벌이고 계시는 중이시다.

일주일에 세 번, 투석을 하러 가시고, 신장이 안 좋으시니, 심장까지 영향을 미쳐

호흡이 가빠 힘들어하셨다.

우리 집에 오시기 전에 일주일에 한 번씩 응급실에 실려가, 다시 입원하고 퇴원하고를

반복하는 일을 한 달 가까이 겪으셨다.

그 후로 몸이 급속도로 쇠약해져, 앙상하게 뼈만 남았다.


우리 아버님은 정말 훤칠하시고 잘 생기셨다.

예전에 신성일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으실 정도로 잘생기시고

동네 씨름대회에서 1등을 할 정도로 힘이 장사였다고 하신다.

그런 아버님이 병마와 싸우시면서 너무 연약해진 모습으로 변하셨다.

남편과 결혼한 지 28년이 지났으니 우리 아버님과 함께 한 세월도 28년이다.

28년 동안 보아온 우리 아버님 모습 중에 가장 힘이 없고 약한 모습이었다.


어머니가 꼬리뼈가 다치셔서 한 달 정도 우리 집에 두 분이 다 오셔서

생활하고 계시는 덕분에 우리는 먹지 않았던 삼시 세 끼를 먹고 있다.

삼시 세 끼의 효력 덕분인지, 아버님과 어머니가 급속도로 회복을 하고 계셨다.

두 분 다 좋아지고 계시니 참으로 다행이었고, 우리는 아침 식탁에서 마치

시트콤을 찍듯이 매 순간 웃을 일이 생기곤 한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아버님이 고추를 드시면서 마치 예전으로 돌아가신 듯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이야아~ 이 고추는 진짜 고추맛이 난다."


말씀하신 것이다.

아무래도 아버님이 말씀하시는 진짜 고추맛의 비밀은 청춘이 아닐까?


'신선하고 생생하고, 잘린 꼭지까지 신선함이 느껴지는 그 맛! 맵지만 달았던 그 청춘의 맛!'

젊은 날,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신성일처럼 잘 생기시고, 씨름에서 1등 할 정도로

힘이 쎘던 그 청춘이 사라져 간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

아버님의 앙상하게 마른 몸에서 어찌 그리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었는지?

아무래도 사라져간 청춘에 대한 그리움의 힘인 거 같아.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김광석 서른 즈음에 중에서-


나도 모르게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흥얼거리며 설거지를 마친다.


"아, 나의 청춘, 나의 진짜 고추맛은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인생은 60부터인데, 난 아직 멀었잖아.  

으하하하"


호탕하게 웃으며 사라져 가는 나의 청춘에 쓸쓸한 위로를!

다시 돌아오는 나의 새로운 청춘에는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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