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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Jul 06. 2021

적이 싫다

내 낡은 서랍 속의 데스노트


만나고 뒤돌아서면 이상하게 기분이 상했다. 그 사람이 했던 말 하나하나가 뇌리에 박혀 꽂힌 가시를 하나씩 빼려면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하루에 몇 번이고 마주칠 수밖에 없는 관계라 더했다. 멀리서 그 사람을 알아보고 발길을 돌리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쩌다 한 마디라도 이야기를 나눴다! 하면 역시나,였다.  


난 대체 왜 그렇게 그 사람이 싫을까. 대체 왜 온 힘을 다해 싫어하게 됐을까.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이 일 년에 한 명씩은 있었던 것 같다. 온 힘을 쏟아부어야 하니 한 사람일 수밖에 없었고, 온 힘을 쏟아부으니 일 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밑도 끝도 없이 미치도록 싫었다. 정성껏 미워하고 증오했다. 호시탐탐 SNS며 카톡 프로필을 엿봤다. 안 좋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SNS에는 행복한 모습뿐이고 카톡 프로필은 웃는 사진뿐이었다. 그럼 난 또 사람이 저렇게 가식적이라고, 속으로 흉을 봤다. 지금까지도 몇 명의 SNS는 꾸준히 지켜보고 있다. 안 되길 바라는 마음도 여전하고 미웠던 감정도 꿈틀대지만, 모르는 사람의 SNS를 보듯 무심해지는 날도 왔다. 그렇게 몇 명은 데스노트에서 사라졌다.


웃기게도 SNS가 비공개로 전환되어 더 이상 염탐을 할 수 없게 되면 감정은 쉬이 사그라들었다. 안다. 염탐을 그만하면 되는데, 그걸 아는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꾸준히 봤고, 날로 미워했다.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정말 나쁜 사람이라면 주변에 사람이 없겠지만 그 사람들의 SNS에는 늘 하트와 댓글이 한가득이었다. 간혹 정말 나쁜 사람도 있었겠지만 대체적으로 그냥,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 나이쯤 되니 맞지 않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생겼다. 몇 번 만나보면 대충 느낌이 왔다. 그런데 가끔 내가 한 발짝 멀어지면 두 발짝 다가오는 사람도 있었다. 가까이하면 적이 될 게 뻔해서, 그럼 또 두고두고 미워하게 될 게 뻔해서 거리를 유지하려고 엮이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는데 결국 들키고 말았다.


자주 마주쳐야 하는 사람이라서 더욱 적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마주칠까 두려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촉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 불편하긴 했어도 적이 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런데 관계가 시작된 이상, 데면데면한 사이로 돌아가는 건 적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친해져 볼까 노력했던 시간도, 이후 수시로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애썼던 마음도 모두 부질없었다. 애초부터 목인사로 끝내야 했던 관계였다.


맞는 사람은 달랐다.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관계여도 일 년을 만난 사람처럼 친근했다. 몇 시간을 이야기해도 헤어짐이 늘 아쉬웠다. 이런 관계가 좋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노력이 있지만 맞지 않는 사람과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지치지 않았다.


이젠 처음부터 빠른 속도로,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이 무섭다. 서로가 맞는 사람인가 충분히 겪어본 후에 관계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남녀 관계처럼. 썸도 타고, 그러다 아니면 ! 좋으면 우리 오늘부터 1~!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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