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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의주도 미세스 신 Aug 23. 2021

산후우울증에 지지 않는 방법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산후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다.

미역국을 씹지도 못하고 입으로 밀어 넣을 때,

아기가 젖을 먹다 짜증을 부리거나 잠에서 깨어 악을 쓰며 울어댈 때 

조금만 힘을 빼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안간힘을 다해 눈물샘을 붙잡고 있었다.


매사에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어차피 한 시간 뒤에 깨야 하는데 잠은 자서 뭐하나 싶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없이 시간이 제자리걸음을 걷는 것 같았다.

단어들이 생각나지 않아 세련되게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고

그 어떤 활자에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유쾌하고 씩씩했던 내 모습을 잃어버렸다.


말로만 듣던 산후우울증이었다.


살이 찌고 부어있는 거울 속 초라한 내 겉모습보다

더 마주하기 힘들었던 건 나의 내면이었다.

해님처럼 방긋 웃는 아기를 옆에 두고도 

내 마음이 눅눅하게 젖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 소중한 시간을

더는 이렇게 낭비할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게 애도 낳았는데 우울증 따위에 질 수 없다.

매일 우울감을 이겨내는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다.

그중에서 나에게 효과가 좋았고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것들을 적어본다.


1. 매일 아침 따뜻한 물을 마신다.

따뜻한 물을 마시면 혈액순환이 되면서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

티백으로 된 차를 우려먹으면 효과가 더 좋다. 

매일 눈 뜨면 미역국을 욱여넣기 바빴던 시작을 바꾸니 하루가 달라지고 있다.


2. 각종 영양제를 챙겨 먹는다.

아무 의욕이 생기지 않은 건 영양이 부족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최소한 비타민C, 종합영양제, 유산균, 철분은 챙겨 먹고 있다.


3. 하루에 한 번 이상 샤워를 한다.

전에는 세수를 하는 것조차 사치라는 생각에 10분이라도 더 잠을 자려했다.

몇 번 시도를 해보니 물로만 샤워를 하는 건 5분이면 충분했다.

따뜻한 물을 온몸에 끼얹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고 힘이 나는 것 같다.


4. 하루에 30분 이상 걷는다.

아직 격한 운동을 하기는 힘들어서 걷기를 택했다. 

그동안은 아기가 낮잠을 잘 때 누워서 휴대폰으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기웃거렸다.

그럴수록 더 우울해지는 것 같았다. 이제는 그 시간에 걸으며 명상을 한다.


5. 철 지난 드라마를 정해 정주행 한다.

밝고 유쾌해서 스트레스받을 일 없는 것이라면 더욱 좋다. 

아니면 너무 불행하거나 오싹해서 내 삶에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한 번에 10분씩 수차례에 걸쳐 나누어 봐야 하지만 

주인공의 대사를 듣고, 인물 관계와 서사를 파악하다 보면 

출산 후 생긴 건망증을 치료하는 데에도 효과가 있다.


6. 먹고 싶은 간식과 과일을 충분히 사둔다.

먹는 건 역시나 매우 중요하다. 

달콤한 간식과 제철 과일을 잔뜩 사서 냉장고에 쌓아둔다.

언제든지 손 뻗으면 닿을 곳에 맛있는 게 있으면 

우울한 마음이 들 때 금방 행복해질 수 있다.


7. 살 빠지면 입고 싶은 옷을 장바구니에 담아둔다.

나는 이번 해에 옷을 사지 않기로 했다. 출산 후 이상해져 버린 내 몸매 때문도 있지만

당분간은 멋진 옷을 입고 나갈 일이 없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옷을 장바구니에 담아두면 

내 옷장에 새 옷이 생긴 것처럼 마음이 든든하다.


8. 불금엔 탄산수나 무알콜 맥주를 한 잔 한다.

모유수유 때문에 아직 맥주는 마시지 못하지만 

불금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여유 있는 척을 해본다.

설마 내년에는 우리 아기도 통잠을 자겠지?

그날을 기다리며 탄산수로 "치얼스-"


9. 나중에 가고 싶은 카페나 식당을 스크랩해둔다.

수제버거에 밀크쉐이크, 크로플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도시의 맛이 그립다.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 유튜브나 블로그에 나오는 핫한 가게들을 스크랩해두고 있다.

우리도 언젠가는 외식할 수 있겠지?


10. 운전을 하고 카페에 가서 음료를 한 잔 사 온다.

몇 달 만에 다시 운전을 했다. 

아기랑 있으면 맨날 바보처럼 버벅거리는데 나도 잘하는 게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가끔은 운전을 하고 나가 DT로 운영되는 카페에서 음료와 브런치를 사 온다.

'차도녀'가 된 것만 같은 착각이 들면서 우쭐해졌다.


출산이나 육아로 마음이 힘든 분이 이 글을 읽고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을 얻으시면 좋겠다.

위의 일들로 단번에 나아지진 않겠지만 

한 가지씩 따라 하다 보면 자신만의 방법을 찾을 수도 있고

또 그렇게 하루를 견디다 보면 언젠가 분명히 괜찮아질 거라 믿는다.


우리 집 주먹왕! 엄마를 지켜줘!!


<남편의 참견>

아가야, 아빠도 산후우울증이 왔어. 아빠의 우울증은 너와 엄마가 치료해주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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