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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4박 5일 걷기 여행 - 윗세오름

상대방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스스로 묻어버린 삶

by 그믐 Jan 23. 2025

윗세오름은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방문입니다.


버스 시간에 맞춰 일찍 일어나 계획했던 시간에 한라산영실지소에 도착합니다.


한라산영실지소로 진입하는 구불구불한 긴 도로를 따라 이미 많은 차들이 길게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한라산영실지소에서부터 본격적인 들머리까지 도로로 이어진 구간을 직접 올라가야 합니다. 차는 진입할 수 없고 약 50분가량 걸어갑니다.


서울에 사시는 분들은 북한산우이역에서 백운대탐방지원센터와 거리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만 경사도가 더 가파른 느낌이라 은근히 체력 소모가 있습니다.

열심히 영실코스 들머리를 향해 걸어갑니다.


걷다 보니 눈사람이 예쁘게 만들어져 있네요.


이윽고 영실코스 들머리에 도착합니다.

많은 분들이 들머리에서 스패츠와 아이젠을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들머리를 통과하자마자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됩니다.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고 땀도 적지 않게 납니다. 그리고 1시간 뒤 이런 풍경이 펼쳐지네요.


30분 정도 더 올라가니 점점 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세의 모습이 가까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르다가 중간에서 만난 전망대 쪽에서 내려다본 제주도의 풍경입니다.


오르막의 막바지에 다다라 다소 평평한 지대를 10분가량 걷다 보면 눈 덮인 광활한 대지가 펼쳐집니다.

한라산 남벽도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저 멀리 보이는 한라산 남벽 쪽으로 걷다가 중간에 전망대를 만나 풍경을 감상합니다.

사람들이 개미처럼 조그맣게 보이네요.


전망대에서 내려와 다시 걸으니 누군가 하트 모양의 눈 조각을 만들어 놓았네요.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하니 수많은 사람들이 눈밭에 앉아 사진을 찍고 음식을 먹고 눈싸움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도 화장실을 들렀다가 잠시 앉아 간식을 챙겨 먹고 어리목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오르면서 봤던 풍경보다 하산하며 마주치는 풍경이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을 보여주고 있네요.



어렸을 때는 눈을 참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눈이 내려도 크게 감흥을 느끼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익숙해진 거겠죠.


살다 보니 뭔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어쩌면 슬픈 일 같기도 합니다.


특히 관계에서만큼은 그랬던 것 같아요.


저의 경우, 낯섬에서 오는 불편함을 넘어 편해진 상대방이 쉽게 보인다는 것은 늘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처럼 그와의 관계가 끝날 때가 됐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관계 구도가 늘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상대방이 제가 그어둔 선을 넘어 심하게 저를 장악하려 하거나 치부를 건드리려고 했던 적이 많았어요.


상대방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계속 그렇게 그 사람 입장에 맞추고 살아가다 보니 내가 나로서 살지 못했다고 할까요.


나의 본모습을 감추거나 억누르게 되는 시간이 길어진 거죠.


그래서 이제야 혼자서 다니는 게 편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저의 민감함이 그들의 악의 없는 진심을 과도하게 밀쳐낸 것일지도 모르겠고요.


눈 덮인 한라산이 예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라산 특유의 자연 정취가 폭설로 인해 묻혀버린 게 아닌가, 하는 아쉬운 기분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눈앞에 보이는 일반적인 자연현상에 지나치게 제 입장을 상징적으로 투영한 것일 뿐이겠죠.


눈은 그저 눈일 뿐일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번에는 한라산의 본모습이 제대로 느껴지는 계절에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리목탐방지원센터로 내려와 주말에만 운영하는 눈꽃 버스 1100번을 타고 제주 시내로 향했습니다.


해장국과 찹쌀 팥도너츠를 사 먹고 나서 버스를 타고 제주 서쪽을 빙 돌아 다시 서귀포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 바로 근처에 대형마트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시리얼과 바나나, 우유를 사서 돌아와 간식으로 먹고 편히 잠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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