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몰아치는 칼바람은 언제 끝날까
몸이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늦잠을 자버렸습니다.
제가 있는 호텔에서 윗세 오름으로 가려면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합니다. 그런데 1100도로 입구 정류장에서 두 번째로 갈아타야 하는 그 버스가 하루에 몇 번 오지 않아요.
이미 늦게 일어나 버리기도 했고, 윗세 오름 입산 시간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우려 때문에 행선지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애월 쪽으로 가서 드넓은 제주 바다를 끼고 걷기로 했어요.
제주 올레 트레일 지도를 살펴보다가 제주 올레 15-B코스를 걷기로 했습니다.
아침을 챙겨 먹고 서귀포에서 북쪽 방향인 고내 포구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제주 올레 15-B코스 종착점인 고내 포구에 내려 역방향으로 걸어가려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협재, 금능 해변까지 가기로 마음먹었는데 족히 15킬로를 걸어야 할 것 같네요.
하루에 40킬로도 넘게 걸은 적 있어서 크게 문제 될 게 없습니다.
걷는 내내 눈앞에 펼쳐진 푸르른 바다와 청량한 하늘에 마음이 상쾌해집니다.
제가 해외를 잘 나가지 못해봐서 그런지 몰라도 제주 바다는 그 어떤 바다보다도 쾌적해 보이고 색감도 청량한 것 같습니다.
2018년도에 처음 제주도에 와서 받은 충격이 매년 올 때마다 다시 재현되는 느낌이네요.
아무 생각 없이 바람을 맞으며 걷다가 한담해변을 지나 곽지해수욕장에 도착합니다.
곽지해수욕장에서 잠시 앉아 바다를 구경하며 간식을 먹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갈 길을 갑니다.
정자 쉼터 옆에 냥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네요.
영등할망의 변덕이 참 귀엽네요.
하지만 그 변덕에 대해 책임을 지는 모습이 반전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문득 친할머니, 외할머니가 생각나네요.
제 친할머니, 외할머니는 다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두 할머니와 크게 유대관계가 없었어요.
그분들이 저에 대한 애정이 있었는지 지금에 와서 알 수 없지만 내가 까마득하게 어린 시절 목욕탕에 데려가거나 간식으로 찐 고구마에 김치를 자주 얹어서 주시곤 했어요.
참 맛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외할머니는 어린 제가 당신의 집으로 가면 보자마자 껴안고는 내 새끼, 하며 볼을 자주 비벼대곤 했습니다.
그땐 그게 귀찮게 느껴졌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손자를 대하는 할머니의 심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몇 년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가지 않았습니다.
치매가 온 외할머니는 예전부터 제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장례식에 가지 않은 건 아니에요.
절연한 부모님과 저와의 관계 때문인데요.
'그곳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브런치 북을 읽어보신 분들은 어느 정도 짐작하셨을 테지만, 부모님과 제 사이에 일어난 많은 일들은 차후에 또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친할머니는 아버지의 계모였습니다. 친할머니 때문에 아버지가 유년 시절을 참 힘들게 살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친할머니 입장에서는 저를 가까이하기 껄끄러웠던 것 같아요.
내가 태어나기도 전 아주 옛날, 당시 외가 쪽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을 극렬히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두 분은 반대를 무릅쓰고 저를 배면서 결혼식을 올리게 됐죠.
두 분의 결혼 생활은 외가 쪽에서 예상한 대로 흘러갔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그런 책임을 질 필요까지는 없지만, 두 할머니는 영등할망처럼 저에게 그동안 쏟아진 세찬 바람들을 다 거둬가지는 않으셨어요.
아마 당연하게 제 몫으로 남겨둔 것 같아요.
이 수많은 칼바람들을 내가 다 헤아릴 수 있을 때까지 맞닥뜨려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협재해변에 다다랐네요.
저기 멀리 비양도가 보입니다.
곧 일몰이 시작되려나 보네요.
제가 걸어온 발자국들을 문득 돌아봅니다.
앞으로 또 어떤 인생을 얼마나 더 걸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계속 걸어가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