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합격이 맞나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일이 일어났다. 뮤지컬 합격자 발표날, 당당히 '예비 합격'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탈락이면 탈락, 합격이면 합격이지 예비 합격이 뭐야. 대학입학 할 때도 예비 번호를 받아본 적이 없는 나는 '예비'라는 말에 맥이 풀리고 말았다.
문자를 받고 이런 마음이 들었다.
이거, 탈락인데 미안해서 예비합격이라고 한 거 아닐까. 예비 합격을 받고 합격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기대를 하지 말아야지 그래야 실망하지 않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지워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6월 말이 되어가는데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나는 노래를 더 하고 싶은 마음에 서성거리다가 뜻밖에 새로 결성하는 락밴드에 보컬로 지원하고 말았다. 이게 안되면 저거라도 해 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7월 1일.
그날은 제주 전역에 폭염주의보가 내린 뜨거운 날이었다. 어린이집까지 걸어내려 가는 동안 햇볕 쬘 자신이 없어서 모닝을 끌고 어린이집 하원을 하러 갔다.
평소 같으면 놀이터에서 두 시간씩 놀아야 하겠지만 오늘 같은 폭염에는 잠깐 걷는 것도 힘들었다. 동동이를 차에 태워서 집으로 올라가 주차장에 차를 댔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뮤지컬 물방울 기획자인데요. 오티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전화를 받고도 귀를 의심했다. 6월 말까지 준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제가 합격했나요? 저는 연락을 받은 게 없는데요?"
"네. 명단에 있으신데요? 고미진 배우님 맞으시죠?"
합격한 줄도 몰랐는데, 오티에 오라고 총감독님이 일정을 물어보신다. 연습하고 있는 작품은 있는지. 7월 평일 오후에 시간이 괜찮은지. 자동차 뒤에서는 덥다고 동동이가 찡얼거리고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7월 1일에 온 그 전화가 바로 6월 말일까지 연락하기로 한 합격 전화였다.
며칠 동안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못했다. 나 자신이 일단 합격했다는 걸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떨어졌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꿈이 대 놓고 알려주었는데. 나는 꿈마저 믿지 않았다. 오디션 합격자 발표가 난 날, 나는 뱀 꿈을 꿨다. 그냥 합격하는 것과, 떨어진 줄 알았다가 구사일생 합격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떨어졌다고 믿는 동안 나는 두 번째 도전을 생각했다. 이번 한 번으로 안타깝게 끝낼 수는 없다는 마음이었다.
혼자 노래를 꾸준히 연습할 수는 없을 것 같으니 같이 해보자는 마음으로 락밴드에 들어갔다. 아마도 뮤지컬 오디션에 한 번에 붙었다면 락밴드엔 들어갈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떨어졌다고 믿는 동안, 합격했다면 얻었을 기회가 엄청나게 아깝게 느껴졌다. 작품을 만드며 배울 수 있는 모든 경험을 빼앗긴 것만 같았다. 10월에 작품이 올라가면 그 작품을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합격 전화가 온 건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물론 기다림의 시간 동안 가슴을 졸이며 애를 태웠지만. 모든 건 완벽한 시간에 완벽한 때에 이루어졌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기회가 더 소중하고 값지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35살에 뮤지컬 배우가 될 것이다.
오예!!
*사진: Unsplash의Sonder Qu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