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나 감사합니다.
요즘 육지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있어요. 에어비엔비 숙소를 잡고 머물면서 지인이 올 때 맞춰서 전시장에 나가고 있습니다.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아이랑 하루를 보내는 건 참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에요. 뭐든 하다 보면 하루가 쑥 지나가 있는 마법을 보게 되지요.
제가 머무는 숙소는 넓은 아파트에 방 한 칸이에요. 처음에는 좀 어색했지만 지금은 주인집 아주머니와 손자들까지 모두 아는 사람 같고 먼 친척집에 놀러 온 느낌이에요. 어제는 마트에서 수박을 한 통 사서 나눠먹었답니다.
오늘은 전시 첫째 날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해요.
전시 설치하는 날, 캐리어를 바리바리 싸들고 오니 벌써 벽을 세우고 다들 분주했어요. 아침을 먹지 않고 도착한 탓에 저는 동동이랑 아점을 먹으러 갔지요. 가서 배를 채우고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전시장에 도착했어요.
그곳에는 벽 하나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모르는 것 투성이이지만, 어찌 됐던 액자를 보기 좋게 거는 데 성공했어요. 아마 교실 뒷벽에 학생 작품을 꾸미던 재능을 여기에 쓸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무사히 마무리를 하고 숙소에 갔는데 다음날이 바로 전시장 지킴이라는 사실... 첫날에 하고 싶다는 생각을 왜 했을까요. 이렇게 피곤할지 몰랐던 모양입니다.
전날 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의 여파가 이렇게 클지 몰랐어요. 디카페인만 먹던 제가, 정신을 차려보겠다고 먹은 아메리카노는 새벽 3시가 되도록 잠을 못 들게 만들었답니다. 피곤하고 졸린데 잠이 안 와서 잠자는 걸 포기할 때쯤 잠이 들었어요.
그렇게 전시장에 와서 조용한 노래를 틀어놓고 졸다가 말다가 하면서 브런치에 글을 하나 써서 올렸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그 글을 보신 독자님이 전시장에 찾아왔어요!
세상에나 이런 경험은 처음이네요.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올리고는 있지만 '과연 누가 내 글을 읽을까?'이런 생각을 가끔 하곤 해요. 어떨 때는 내가 쓴 글들이 공중에 그대로 흩어져 버리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날 써서 올린 글을 읽고 한 분의 독자님이 전시장에 와 주셨어요!
첫, 독자와의 만남. 어딘가에 살고 있는 누군가와의 만남이 정말로 인상 깊고 감사했어요. 가끔 작가님들이 서점에서 아니면 지하철에서 자기 책을 들고 있는 독자에게 말을 걸까 말까 고민한다고 하잖아요. 그런 독자님을 한분 만난 느낌이랄까요?
아마 나를 잘 알고 있을 독자를 만나는 것은 새로운 기분이었어요. 김영하 작가님, 송미경 작가님, 최진영 작가님을 좋아해서 그분들에 대해서 아는 내용이 조금씩 있어요. 그분들의 글을 읽다 보니 저절로 알게 된 내용이랄까요?
그렇게 독자의 입장에 있다가 독자를 만나니, 오히려 독자님이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그분은 그날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왔다 가셨어요. 신랑이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사 온 스타벅스 주스를 하나 건네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전시 첫날에 저와 이야기를 나눈 몇 분의 관람객들이 계세요. 우연히 수업이 있어서 들린 엄마와 아들.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던 학생. 알레르기라는 제목을 보고 빵 터졌던 사람들.
그분들이 전시를 보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가셨기를 바라요.
전시 기간이 폭우와 겹치는 바람에 더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전시 첫째 날 집으로 돌아오려는 길에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아. 그래서 비가 온다고 알려주셨던 거구나. 어떻게 집에 가지.
전시장에서는 택시도 잡히지 않았어요. 걸어서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동안 신발도 옷도 머리도 온통 젖어버린 동동이와 저는 무인 운영하는 빵집에 들어가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수제 햄버거를 데워먹었어요.
그날 밤 새로운 숙소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고. 오늘까지도 비는 오락가락하네요. 비와 함께 하는 이번 전시. 잊지 못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