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세계여행이었는데
열흘이 넘는 육지여행을 마치고 제주도에 돌아온 지 4일째이다.
세상에 이걸 이제야 알았다. 내가 생각보다 더 집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20살이 되어서 바깥세상으로 나갔을 때, 어디든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새로운 세상이 나를 부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 인생 목표는 세계여행을 가는 것. 1년 내내 장기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매일을 여행으로 사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오늘 여기에서 자고 내일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건? 작은 배낭이 나의 짐의 전부라면!
그건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일이었다.
20대 중반에는 여름 방학 내내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다행히 함께해 주는 친구가 있어서 그 긴 여행을 잘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내가 집에만 콕 박혀 있을 때가 있었으니, 바로 동동이를 기르는 첫 1년 동안이다. 말 그대로 집 밖에 나가기 위해서는 유모차를 끌어야 했다.
집 밖에 나가는 것도 어렵고 코로나는 기세 등등 했다. 낮잠 자는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이리저리로 밀어가며 집 근처를 산책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렇게 점점 집이 익숙해졌고, 그 생활에 적응을 해 갈 즈음 아이는 어린이집을 씩씩하게 다니며 자유시간을 주었다.
열흘 중 3박 4일은 아이와 처음으로 떨어져서 혼자 있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는 다짐과는 다르게 아이가 보고 싶었다. 동동이가 5살이 되는 동안 우리는 단 하루도 떨어진 적이 없었던 것이다!
20살의 불안함이 똑같이 밀려왔다. 갑자기 자유를 가졌을 때 느꼈던 불안함이었다. 나이가 들고 성숙해져서 불안을 느끼지 않는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35살의 나는 20살의 나와 정확히 같았다.
아이가 없으니 핸드폰을 더 많이 봤고, 핸드폰을 봐도 불안함이 몰려왔다. 잘 시간이 정해지지 않으니 1시까지 버티면서 핸드폰을 봤고 다음날 지친 몸으로 일어나야 했다. 낯선 숙소는 내 집 같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집이 깨끗하게 정돈된 에어비엔비처럼 느껴진다. 제주도의 바람이 잘 돌아왔다고 말을 거는 것 같고 모닝을 끌고 어딜 가더라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나는 내 집, 책상, 침대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긴장이 풀리고 나만의 루틴에 맞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동동이 덕분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핸드폰도 많이 보지 않는다. 동동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동안 소중한 자유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좋아하는 푹신한 의자가 있고, 원하는 각도로 조절가능한 원목 작업대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다. 블루투스 스피커는 언제든 노래를 틀 준비가 되어있다. 책상에 앉자마자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침대 매트리스는 얼마나 환상적인지, 신혼 이후로 쭉 같은 곳의 매트리스를 사용하고 있는데 몸을 포근하면서도 탄탄하게 받쳐준다. 그 위에 누우면 잠이 절로 온다.
이렇게 환상적인 공간을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것이다.
집을 떠나고서야 집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는다. 훌훌 혼자 다니고서야 가족의 그리움을 느낀다. 그래서 가끔은 혼자 떠날 필요가 있나 보다.
그래도 이 생활이 너무 지루해지기 전에 또 다른 여행을 떠나고 싶다! :)
*사진: Unsplash의Brian Ba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