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마스크 쓰고 아기 낳았네

코로나에서 버틴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들


12시가 넘도록 신랑과 소파에서 버티다가 결국 병실에 들어가 누웠다. 안 그래도 꽉 차있는 다인실에서 보호자 침대를 꺼내놓기 힘들었다. 신랑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다른 병실에 있는 빈 침대 하나에 몰래 들어가 커튼을 치고 누워서 잤다.


새벽에 배가 묵직하고 골반이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특히 왼쪽 골반과 엉덩이가 뻐근하게 아팠다. 땅콩 볼을 뻐근한 골반 밑에 놓고 마사지하며 어떻게든 잠을 자보려고 했다. 배는 가진통처럼 살살 아팠고 오줌이 마려운 것 같아서 화장실에 가면 피만 살짝 묻어 나왔다.


병실에서 안절부절못하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누군가 잠을 설쳐서 큰소리로 한숨을 내 쉬었다. 같은 병실을 쓰는 사람들은 산모가 아닌 모양이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가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었다.




새벽 6시에 간호사가 병실을 1인실로 옮겨주었다. 짐을 챙겨 와 병실에 누워 있는데 반가운 목소리로 내게 인사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때 종종 이야기를 했던 푸근한 간호사였다.


새벽 교대를 마쳤는지 나에게 딱딱거리던 그 간호사는 없었고 온통 다른 사람들이었다. 간호사는 왜 무통 주사를 안 맞겠다고 했냐면서 자기 자신의 출산 이야기까지 줄줄 읊어가며 나를 설득했다. 나는 마음이 어느새 누그러져서 주사를 맞겠다고 했다.




1인실로 내려와서 비로소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밤새 아팠지만 겨우 1센티 열렸나. 간호사는 내진을 하고는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다며 자리를 떠났다. 분만이 촉진되는 링거를 손등에 꽂았는데 바늘이 정말 굵었다.


바로 옆에서는 다른 산모가 분만하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다. 어찌나 소리를 질러대는지 아기가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았는데 몇 시간째 소식이 없었다. 목은 괜찮은지 저렇게나 소리를 질렀는데 아기는 아직인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신랑은 그 소리를 듣고 약간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아기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집에서 가져온 짐볼을 타면서 명상음악을 들었다. 의사 선생님이 이 모습을 보고는 “아직은 괜찮죠? 아파야 아기가 나옵니다.”하고 허허 웃으며 가셨다.


아팠다가 말다가 가진통 같은 게 왔지만 본격적인 주사를 맞기 전까지 겪었던 진통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10시가 되자 3센티 정도 열렸다는 말이 들렸고 의사 선생님은 이제 좀 아플 거라면서 엉덩이 주사를 놨다.


그리고 진짜 진통이 시작되었다. 그때부터는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식은땀이 너무 나서 추웠고 남편의 경량 패딩을 덮어서 아예 얼굴을 가려버렸다.


손에는 땅콩 볼을 쥐고 있었는데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손톱이 나무에 박힐 것 같았다. 진통은 왼쪽 골반을 타고 왔다. 정확히 평소에 안 좋았던 곳이었다.


나는 신랑에게 끊임없이 왼쪽 허벅지와 골반을 쓸어달라고 했다. 손이 닿으면 그나마 견딜만했지만 손이 떨어지면 왼쪽 골반으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새벽의 통증은 장난이었다.


거금을 주고 교정을 했기에 이는 절대로 악물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었다. 출산 후에 이빨이 다 깨져 버릴까 봐 정말로 무서웠다. 요가를 하면서 힘든 동작에서 버틸 때 느껴지는 고통이 아기를 낳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정말 그 이상이었다.




동그란 것이 자궁 경부에 끼인 것 같은 느낌이 나고 양수가 터지자 그때부터 쉴 새 없이 진통이 몰려왔다. 보건용 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나 벗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는 땅콩볼을 꽉 쥐고 기도했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이미 온몸은 땀으로 한차례 젖은 뒤였다. 나는 땅콩 볼을 쥔 손을 덜덜 떨었다. 눈물이 나는지 땀이 흐르는지 구분이 안 됐다. 이 진통을 언제까지 겪어야 하는지 무서웠다. 진통이 오면 고통을 어찌할 수 없어서 허리가 뒤로 꺾일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도 도현님의 말대로 힘을 꽉꽉 주었다. 제대로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었지만 그게 유일하게 내가 믿을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


숨을 몰아쉬다가 신랑에게 간신히 간호사를 불러달라고 했다. 무통 주사를 맞을 수 있냐고 물었다. 곧 마취 선생님이 오실 거라고 했는데 잠깐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흘렀다. 간호사가 보건용 마스크를 벗기고 산소마스크를 씌웠다.


“숨을 잘 쉬어야 해요. 후우우.”


간호사를 따라 숨을 내쉬려 해 봤지만 잘 되지 않았다. 잠시 후 덜덜 떨리는 몸으로 새우처럼 쭈그려 옆으로 누웠고 무통 바늘을 허리에 꽂았다. 주사가 꽂히는 느낌은 들지도 않았다. 그리고 모든 진통이 서서히 사라졌다. 곧 아기가 나올 거라고 했다.




신랑이 짐을 정리하러 가는 동안 본격적인 분만 준비가 시작됐다. 진통이 멈춘 동안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고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분만실은 어두웠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신랑이 허겁지겁 달려와 위생장갑과 가운을 입었다.


나는 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아기를 낳았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봤던 남편은 지금도 가끔 그 놀라운 순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한다.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윗몸을 들어 올리고 힘을 주는데 아무 느낌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에 맞은 무통 한방이 찰떡같이 잘 들었기 때문이었다.


“12시 39분입니다.”


아기가 나오고 아빠가 탯줄을 잘랐다. 신랑은 탯줄이 얼마나 투명하고 깨끗했는지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마지막 주에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그랬는지 아이는 초음파로 무게를 쟀을 때 보다 작은 3.15kg이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아기를 초록 담요로 살짝 감싸서 가슴 위에 올려주셨다. 나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들떠서 세상에 나온 아기와 마주했다. 어떻게 아기를 낳았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태어난 직후 아빠와 하는 목욕

손가락 다섯 개 발가락 다섯 개. 아기는 침대 옆에 마련된 따뜻한 욕조에서 아빠와 간호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목욕을 했다.


아기가 신생아실로 옮겨지고 커튼을 치니 아직도 햇살이 환했다. 밤 12시까지 진통을 한 줄 알았는데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겨우 2시간 39분이 흘러있었다.




위험한 순간 없이 짧은 시간 안에 아기를 자연분만으로 낳을 수 있었지만 쉬운 것은 하나도 없나 보다. 얼마나 많은 피를 쏟았는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지러워서 스스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신생아실에서 하얀 속싸개를 한 아기가 다시 한번 침대로 왔다. 체온 유지를 위해 노란 모자를 쓰고 있는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눈을 빼꼼히 뜨고 있었다.


얇고 하얀 피부에는 핏줄이 투명하게 보였다. 아기는 정말 작고 따뜻하고 예뻤다. 내가 아기를 낳은 사실이 정말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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