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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글 Mar 18. 2022

글쓰기는 유전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공돌이다. 우리나라에서 공돌이라고 했을 때의 이미지는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고 논리적인 문제들을 풀어나가는데 더 재능이 있는 그런 느낌이 강할 것이다. 주변에서 하도 그런 방향으로 이야기를 많이 하니 자신도 모르게, 나는 글쓰기 재능이 없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이렇게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그런 공돌이인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브런치에도 글을 쓰고 블로그에도 쓰고, 가족 글쓰기로도 글을 쓰고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썩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쓰며 지내는 것이다.


사실 공돌이라고 글쓰기와 거리가 멀지는 않다. 대학교에서 교수님들이 내주는 리포트 과제를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석박사 논문은 그 출발점이 글쓰기다. 구조화된 글을 잘 써서 내는 것이 그 목표이니 글쓰기를 잘해야 한다. 요즘은 고등학교에서도 논술이 강조되어서 이과든 문과든 글쓰기는 어느 정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교감이 잘 되어 있기도 하다. 어찌 되었던 우리는 글을 쓰며 산다. 많이 읽기도 하지만, 의외로 글을 많이 쓴다. 사소한 것 같지만 카카오톡이나 문자로 주고받는 그 많은 문자들도 모아 놓고 보면 글이다. 각 잡고 앉아서 글을 쓰는 것만이 글쓰기는 아니다. 그러니 공돌이와 글쓰기가 거리가 멀다는 것은 일반 사람들이 갖고 있는 편견일 뿐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부모님 품을 떠나 기숙 생활을 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렇게 떨어져 지내는 나를 위해 아버지께서 정기적으로 엽서에 글을 적어서 보내주셨다. 엽서이기 때문에 그리 긴 글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나를 생각해 주시며 응원을 하는 메시지로 가득했던 엽서다. 차곡차곡 잘 모아놓긴 했는데, 기회가 되면 다시 꺼내서 하나씩 옮겨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공돌이로 자라와서 글쓰기는 전혀 안 할 것 같은 내가 글쓰기를 선택해서 뭔가를 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일종의 유전적 요인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책을 많이 읽으시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잘 소화해서 말도 아주 잘하시는 스타일이셨다. 딸의 결혼식에 시를 써서 결혼식장에 걸어두시기도 했고, 그 시는 지금도 본가에 가면 벽에 걸려 있을 정도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은 그런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유전이 아닐까?


가족 글쓰기를 하면서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블로그는 결혼 초기부터 아이가 어릴 때까지 신혼일기와 육아일기로 쓰던 블로그였다. 여행을 다녀와서 여행 사진을 올리면 가족들이 와서 보고 댓글도 달면서 지냈던 블로그여서 예전의 댓글도 남아 있다. 아버지가 남기신 댓글 중에 아래와 같은 댓글이 있어서 일부를 가져와 본다.



그렇다. 어쩌면 글쓰기는 유전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 시의 ㅅ도 쓰지 못하는 실력이라, 그 아버지의 그 아들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글쓰기 자체는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글을 쓰면서 아버지께서 남기셨던 코멘트의 날짜를 보니 15년 전이었다. 그때 이 말씀을 조금 더 곱씹어서 받아들였다면 지금의 내 모습이 사뭇 다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글쓰기가 유전이 아닐까라는 글을 보며, 나는 글을 못 쓰는데 그것도 유전이라 그런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하고 싶다. 주변의 모든 친척을 다 둘러보면 어딘가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어찌 되었던 몸속에는 글쓰기의 피는 누구나 흐른다. 말하는 것을 글자로 옮긴 게 글일 뿐인데 뭐. 말로 하고 싶은 것을 문자로만 옮겨 보자. 글쓰기는 그렇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가족 글쓰기를 시작한 지 1년 반이 되어가면서 온 가족이 잠시 기강이 해이해졌다가 다시 의지를 키우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쓰면 항상 열심히 하고 있던 아이가 섭섭해할지 모르겠다. 정확하게는 아빠와 엄마만 날라리가 됐던 거다.) 글쓰기가 밀리지 않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보완하기 위해서 우리집 <가글법>도 제정했다. 꼼꼼한 아이가 초안을 잡은 가글법은 총 8장 47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는 글을 안 쓰면 법을 위반하는 게 된다. 범법자가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키보드를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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