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최대한 방치하라
먹고 살기 바빠서 아이와 놀아주지도 않던 옛날,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던 옛날에야 부모가 어린이날에 놀아주고 선물해주는 것도 의미가 있었지 요즘은 과연 싶다.
놀이든 장난감이든 이미 충분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고 있다. 아니, 요즘 부모들은 필요한 것을 넘어 형편이 되는 한 가장 좋은 것을 주려고 노력한다. 거실 바닥에 넘쳐나는 플라스틱 장난감과 인형들이 발에 치이고 치인다. 여기서 아무것도 더하고 싶지 않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쉬는시간을 잃은 부모들이 어린이날이라고 또 뭘 더 해줘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음 한다. 특별한날, 특별한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가정의달의 진짜 취지는 잃게 된다. 나는 가정의달이 싫어지려고 하는 참이다.
내 방치육아를 소개한다.
나는 매일 아이를 최대한 내버려두려고 노력한다. 엄마도 편하고 아이도 스스로 재밌는 놀이를 하는 것이다. 아이를 그냥 내버려두면 제일 편하다.
엄마가 아이를 내버려두면 아이는 알아서 재밌는 놀이를 찾는다. 스스로 필요한 것, 재밌는 것을 찾아간다. 내버려두고 가만 보고있으면 알아서 정말 엉뚱하고 신박하게 잘~논다. 요란한 장난감보다도 자연물이나 실제 물건을 가지고 훨씬 더 잘논다. 아기때부터 엄마가 끊임없이 놀잇감을 제공하게 되면 아이는 거기에 익숙해져서 계속 엄마가 무언가를 제공해주기를 바라게 되어버린다. 아주 아기때부터, 혼자 알아서 놀도록 내려버두면 점점 혼자 보내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스스로 찾아 간다. 아이에게는 그런 능력이 충분히 있는데, 끊임없이 엄마가 도와주고 개입하면서 오히려 그런 능력을 잃어버린다. 뭔가 해주지 않으면 아이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자. 아이에 대한 엄마의 불신은 엄마도 아이도 피곤하게 만든다.
엄마들은 아이를 잠시도 가만 내버려두지 못한다. 그냥 내버려두는 것을 방치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방치를 하면 엄마로서 이래도 되나 싶어 죄책감을 느낀다. 사전적 의미는 내버려두는 것 자체가 방치를 뜻하는 것은 맞다. 우리가 걱정하는 진짜 나쁜 방치는 엄마가 아이의 요구에 긴시간 전혀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를 내버려 두더라도 우리는 항상 아이 가까운 곳에 존재하고, 아이가 “엄마”라고 부르는 것에 곧장 반응한다. 도움을 필요로 할때면 바로 나서지 않는가. 그런 우리네 상황에서는 방치는 없는 것과 같으니 마음 편하게 내버려 두자. 아이들이 요구할 때 뿐만 아니라, 요구하지 않을 때조차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니 힘들어진다. 잠시 멍때리기라도 하고 잠시 화장실이라도 편하게 다녀오자.
하루 중에 아이가 오롯이 혼자인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낮시간 내내 기관을 다녀오고 집에 오면 엄마가 늘 함께 한다. 아이도 혼자있는 시간이 적당히 필요하다. 자율성이 있고 자기주도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어하면서 정작 아이가 혼자서 무언가 해 볼 기회를 잘 제공하는지 돌아보라. 엄마의 개입 없이 아이가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시간이 아이에게도 필요하다. 그 시간이 아이가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라도 의미가 있다.
엄마들은 한발 물러서서 지켜보고 있다가 엄마가 필요한 순간 나서야만 아이가 배움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엄마의 착각이다. 아이는 혼자서 시행착오를 거치는 동안 이미 배우고 있다. 엄마가 계속 지켜보다 보면 불필요한 순간에도 결국 개입하게 되고 아이의 놀이에 결국 엄마의 통제와 엄마의 생각이 주입된다.
엄마들의 속마음 중에는 아이가 자신을 그만 괴롭히고 혼자서 좀 놀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할 일이 많은데 아이가 자꾸 자기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며 피곤함을 호소한다. 그러면서도 아이가 몰입한 시간을 너무 어질러서, 너무 위험해 보여서, 무엇인가 망가뜨리는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방법을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등등 갖은 이유로 아이의 자유 시간을 쉽게 차단한다.
아이가 하는 것을 엄마가 모두 지켜볼 필요는 없다. 잘하는지 못하는지 지켜보는 자체가 개입이다. 아이를 지켜보는 엄마는 속이 답답해져 손과 입이 근질거리고 온 몸에 힘이 들어가게 된다. 자기 속도로 나름대로의 시도를 하고 있는 아이에게 괜히 치고 들어가지 말고 눈을 좀 돌리자. 아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어른의 기준에는 맞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아이에게 향한 지나친 관심을 끄고 내버려두자. 방치라는 말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방치가 아니라 아이에게 스스로 해볼 기회를 충분히 준다고 생각하자. 엄마라는 틀에 가두지 않을때, 엄마가 모든것을 채워주지 않을 때 아이는 더 잘 자란다.
또한 아이들에게는 멍때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티비를 보면서 멍때릴수도 있고 잠시 쇼파나 침대에 누워 뒹굴거릴 수도 있다. 아이도 기관에서 짜여진 스케쥴과 단체생활로 종일 힘들었음을 알아주자. 집에서는 편안하게 하고 싶은대로 하도록 좀 내버려두어도 괜찮다. 내 아이도 집에 오면 일단 어떤 활동을 바로 하지 못하고 어느정도 멍때리고 누워서 뒹굴거리며 휴식을 취한다. 뇌에 잠시 쉬는 시간을 준 후에 다시 살아나서 자신의 놀이를 시작한다. 피곤한 아이에게서 창의력이 나올리 없다. 아이에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기력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이다. 그리고 충전이 되면 다시 즐겁게 활동할 것이다. 아이가 항상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빈시간은 아무것도 안하고 낭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한숨 돌릴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이다. 오히려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시간이다.
끝도 없이 재미난걸 같이 하자고 조르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혼자 노는 시간이 있다면 최대한 내버려두자. 그리고 그 시간에 엄마도 한숨 돌리며 좀 편안해지자. 하루에 5분이라도, 10분이라도 괜찮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내아이는 세면대에서 혼자 재미난 놀이를 하고 있다. 나는 이 편안한 순간을 방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는 엄마가 개입하는 순간 흥이 떨어질 것이다. 비누 거품과 칫솔, 작은 물레방아 장난감을 가지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새로운 시도를 하고있다.
주방 살림살이로 10분, 정수기 앞에서 10분, 자동차 장난감으로 10분, 세면대에서 15분, 먹는걸로 20분, 찱흙놀이나 퍼즐놀이로 20분, 욕조에서 30분, 집앞 산책로에서 30분. 중간중간 손이 가지만 최대한 방치하려 노력한다. 딸아이는 아들보다 뭘해도 엄마를 부르고 엄마의 반응을 요구하며 더 상호작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나마 엄마가 못하게 할 것 같은 세면대 물놀이는 끝날 때까지 엄마를 찾지 않는다. 집앞 산책로에서도 개미관찰과 나뭇가지로 노는것만 가지고도 30분은 부족할 정도다. 우리 아이들은 오늘도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며 알아서 아이템을 찾아 재밌게 노는 중이다. 매일 어질러진 집에서 늘 다양하게 노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물놀이와 바깥놀이는 가장 쉬운 방치육아의 방법이면서 엄마의 죄책감도 덜어준다. 바깥놀이를 할 공간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날씨만 괜찮다면 하원 후 아파트 산책로나 10분거리의 공원에서 매일 시간을 보낸다. 거기서 아이들을 내버려둔다. 아이들은 실컷 뛰어다니며 함박웃음을 짓기도 하고 자연물들을 주으러 다닌다고 열심이기도 하다. 긴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노란 나뭇잎이 물고기라며 낚시놀이를 하기도 한다. 모래알들을 물고기밥이라며 작은 손으로 주워 뿌려주기도 한다. 색색깔 나뭇잎들을 돌 위에 올려놓고 요리를 해주기도 한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 정말 뇌가 열려있다고 느껴진다.
노는 것이 남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우리 아이들의 삶 자체가 놀이와 같아서 즐거웠으면 한다. 아이들은 엄마의 시선을 벗어났을 때 가장 재밌게 놀다가, 어차피 엄마의 품으로 곧장 돌아오기 마련이다. 엄마도 아이를 잠깐이라도 내버려둠으로써 조금이라도 편하게 육아를 하는게 어떨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아이에게 신나는 ‘자유시간’을 준 것이니 오히려 뿌듯해 하자.
엄마가 되니 내시간이 피같이 느껴진다. 자유의지로 내가 하고싶은 것은 내 마음대로 하는 시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느낀다. 아이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아이라는 이유로 늘 누군가가 옆에서 자신의 재미난 모험을 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린이날이니까, 아이에게 방치된 시간을 주자. 마침 고맙게 비도온다. 자기 마음대로 놀고 어지르고 마음대로 흘리고 묻혀도 괜찮다고 놔두자. 이미 넘치는 일회성 장난감말고 자유시간의 맛을 선물해주자. 그렇게 엄마도 무언가 특별한 것을 물질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아이와 함께 어린이날을 편하게 보내자. 연휴내내 밥하기는 힘드니까 어린이날 선물을 가장하여 짜장면이나 치킨 정도는 시켜줘야겠다.
(글은 이렇게 썼지만 아이와 숨바꼭질 20번으로 하루를 시작한건 안비밀….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