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소설]
'띠라린따라리라리라라~' 한 시간에 한번 씩 들려오는 저 소리. 내 방의 벽시계는 나와 함께 잠들었다가 여명과 함께 노래하기 시작한다. 오르골 소리 같은 저 가락을 벌써 몇 번째 듣고 있다.
어둠이 내리면 노래하지 않는 타원형 벽시계는 가장자리가 마호가니 빛이다. 시침과 분침이 있는 자판은 아래쪽에 자리를 잡았다. 둥근 계기판 위에는 유니콘이 끄는 마차와 황금 궁전이 있다. 마차는 궁전을 향해 쉬지 않고 달리고, 마차의 양 끝에 매달린 어릿광대와 병정은 9와 3을 친구 삼아 몸을 흔든다.
네가 나에게 벽시계를 선물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뻐꾸기시계를 사 달라고 했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이층집 지붕에서는 매시간 뻐꾸기가 나왔다. 뻐꾹하고 우는 앙증맞은 뻐꾸기가 마음에 들었다. 너는 무슨 도깨비 같은 것을 사려고 하느냐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뻐꾹뻐꾹 하면서 열두 번이나 튀어나오면 깊은 잠에 빠질 수가 있겠느냐며…….
너는 아무 장식도 없고, 노래하지도 않는, 시침과 분침만 있는 둥근 벽시계를 사라고 했다. 나는 부엉이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있는 하얀색 벽시계를 두 번째로 골랐다.
“형태는 기능을 따르는 거야!”
네가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 실로폰 소리처럼 통통 튀는 웃음소리였다. 나는 기능이 형태를 따라야 한다고 우겼다. 나의 숙면을 위해 네가 고른 시계는 어둠 속에서는 울리지 않는 시계였다.
창으로 들어온 햇살을 받아 황금빛 궁전이 반짝인다. 마차에 오르기만 하면 유니콘이 나를 네게 데려다 줄 것만 같다.
그날 너도 시계를 샀다. 값비싼 손목시계를 벗고 동그란 나침반이 붙어 있는 검은색 전자시계를 골랐다. 방향을 잃지 않으려면 나침반이 필요하다는 네 말에 이번에는 내가 크게 웃었다.
벽시계는 눈 덮인 들판 같은 하얀 벽면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사르락 사르락 마차를 굴리면서. 손을 뻗어 천천히 시계를 덮고 있는 유리를 만져본다. 부드러운 먼지가 손가락에 밀린다. 둥글게 원을 그리며 문지르다 가만히 계기판을 들여다본다. 숫자들 속에 네가 있다. 금테 안경 속에서 반짝이는 갈색 눈동자, 웃을 때면 드러나는 가지런한 치아, 흰색 와이셔츠와 줄무늬 넥타이.
너는 단지 시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네가 머무는 그곳에도 시간이 있을까? 거기서도 너는 시간을 재며 살고 있을까? 약속 시간에 조금만 늦어도 너는 시계를 보며,
“미안해, 3분 늦었어.”
라고 분 단위까지 세어 말하고는 했다.
그럴 때면 미안하다는 말은 사라지고 3이라는 숫자만 남았다. 너는 나침반이 달린 작은 손목시계조차 가지고 갈 수 없었다. 지금 너는 일 분, 이 분을 어떻게 헤아리며, 동서남북은 어떻게 구별할까?
누구와 한 약속이든 철저하게 지키려고 했던 너였다. 그러나 나와 우리는 너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너를 그 자리에 세워두었고, 그리고 잊었다. 너의 기다림을 당연하다 여기며 너의 눈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안녕이라는 한마디 말도 남기지 않고 홀연히 너는 떠나갔다. 어둠 속에서는 노래하지 않는 시계만 남겨 둔 채.
떠나기 얼마 전에 네가 물었다.
“절대 고독이라는 말 알아?”
“글쎄? 고독은 인간만이 누리는 특권이라던데? 절대 고독, 멋진 말이네.”
너의 마음을 살피려 하지도 않고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너를 보내던 날. 너의 절망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너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네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는지.
치열했던 너의 삶을 기억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다시 한번 내게 물어준다면 대답 대신 너를 꼭 안아줄 텐데. 네 가슴 속 메마른 들판을 보지 못했던 나는, 홀로 남아서 너를 그리워한다. 그리움은 폭풍우처럼 몰아치지만, 너와 나 사이가 너무 멀어서 다시는 너를 볼 수가 없구나.
(미니픽션, 2019, 좋은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