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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순 Mar 15. 2021

떨어지면 죽습니다

                                             

산책 끝나고

집 앞에 주차된 트럭에 붙어있던 문구

굉장히 극단적이고 맘에 들어요.


제가 팔찌를 차고 다니는데

이미 한 몸이 된지라 샤워를 할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절대 빼지 않아요.

그냥 보고만 있어도 어떤 장면이 생각나는 팔찌라서

내 몸의 부적마냥 달고 다니는데

문득 팔찌를 보니까 점점 색이 변하고 있었어요.

은색이던 팔찌가 티 안 나게 구리색으로,,

분명 은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암튼지간에

팔찌 색 변하는 게 뭐라고 왜 이렇게 마음이 속상한지

막막 꼭 우리가 녹스는 느낌이 들더라니까요?

이제는 쳐다만 봐도 닳을 것 같아요.

그냥 바꾸면 되는 거잖아요 더 좋은 걸로

그래서 물 닿아도 걱정 없이

하루 종일 쳐다봐도 닳을 걱정 없이 바꾸면 되는데

그러면 꼭 그날이 사라질 것 같아서

그렇게 하지도 못하겠어요.



이거랑 비슷하게 예전엔 상자에 그렇게 집착을 했어요.

뭐 이쁜 상자가 아니더라도 다 버리질 못했어요.

그래서 엄마가 화장품을 사고 나면 저한테 ‘희진아 이 상자 버려도 돼? 너 가지고 있을래?’ 이렇게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럼 전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건 버리고 이건 나 줘’ 이랬었어요.


아 그리고 예전에 할머니가 시장에서 사준

곰돌이 인형이 그려진 엄청 촌스러운 베개가 있었는데 그걸 다 닳을 때까지 쓰다가 엄마가 이거 말고 다른 거 베고 자라고 다른 베개를 사줬어요.

그래도 그 베개는 못 버리겠어서 찬장에 넣어뒀는데 어느 날 엄마랑 시장에 갔다가 그거랑 똑같은 베개를 발견했어요.

사실 엄마는 계속 그 베개 버리면 안 되냐고 물어봤었거든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엄마 그 베개 안 버렸지? 물어보니까 엄마가 사실 며칠 전에 쓰레기통에 넣어뒀다고 하는 거예요.

그 소리를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어요.

주변에 있던 시장 할머니들이 엄마 보고 왜 애를 울리냐고 할 정도로 말이에요.

어쨌든 그 자리에서 똑같은 베개를 사고 집에 와서 쓰레기통에 버려진 너덜너덜한 벼개를 다시 찬장에 넣어뒀습니다.


근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상자도 잘 버리고 대청소를 하는 날이면 아직 더 쓸 수 있는 물건들도 다 버리곤 해요.

근데도 아직 집착하는 것들이 여전히 있어요.

팔찌처럼 베개처럼 그런 것들 있잖아요.

제가 특별하게 그렇다는 게 아니고 보통 그런 분들 많잖아요. 그건 다들 그 물건이 누군가와의 추억이 담겨 있어서 그런 거겠죠? 이쁘게 나온 것 같지도 않은 사진을 함부로 삭제하지 못하고 이미 꽉 찬 클라우드에 꾸역꾸역 집어넣는 것처럼 말이에요.


사람은 추억의 힘으로 살아간다잖아요.

가령 팔찌나 베개처럼 사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 작은 물건 하나가 날 살아가게 한다는 게 참 신기해요.


엄마는 저한테 집에 물건을 많이 들이지 말라고 했어요.

니가 정착할 곳이 아닌데 물건을 자꾸 사들이면

나중에 이사할 때 버리기 힘들어진다고.

그런데 버리기 힘든 추억들이 있다는 건 아주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팔찌만 봐도 마음이 애틋해지고

다 닳은 베갯잇이 날 엉엉 울게 하는 거

그 마음 어디서 돈 주고 살 수 없는 거 아니냐구요.


새로 온 이곳에 앞으로 더 많은 물건들이 들어오겠죠?

그럴수록 더 많은 추억들이 쌓이고

전 그걸 버리지 못하게 될 수도 있어요.

이런들 어찌하리 저런들 어찌하리

그 영혼이 깃든 물건들이 텅 빈 이 집을 채워주면

갈 곳 잃은 제 마음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건 지금 제 배경화면이에요. 속이 뻥 뚫리죠? 마스트를 끼고 있지만 안 낀 것처럼 속이 뻥 뚫리는 사진. 하지만 그런 마법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스크 여전히 답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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