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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순 Mar 10. 2021

잔잔한 파도 끝에


고요하다 


1.  조용하고 잠잠하다. 


2.  움직임이나 흔들림이 없이 잔잔하다. 


3. 모습이나 마음 따위가 조용하고 평화롭다    

                                            


                                                                            

가만히 앉아 바다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자면 세상 무서울 게 없어지는 기분이다. 잔잔한 파도들에 내 알량한 고민들을 실어 보내고 나면 무수한 물결들이 거품이 되어 사라져버린다.


그 끝에 남는 건 고요한 물결들뿐인데 그 후 내 마음에 남는 건 그냥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에 아쉬운 마음은 전혀 없다. 그냥 마음이 조용하고 잔잔해진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닐 일들에 마음 쓰고 노력하고 때로는 포기하고 죄책감에 힘들어하기도 마음이 후련해지기도 하는데 바다를 보고 있으면 그 모든 마음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행복한 일들도 마음 아픈 일들도 쓸모 없어진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바다를 보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죽는 것도 무섭지 않게 된다. 그냥 그렇게 시간이 멈춰준다면 그게 제일이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고 싶진 않다. 매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사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 마음을 말이나 글로 설명하려고 하면 단어들이 덕지덕지 붙어 지저분해지고 만다. 그냥 말 그대로 그냥이라는 말로밖에 설명이 안된다. 이런 마음들이 바다를 보면 고요해지니 바다를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예전엔 하루하루가 즐겁고 재미있길 바랐는데 지금은 그냥 조용하고 잔잔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제일 좋게 느껴진다. 날 듯이 기쁜 마음도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마음들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질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건 미화된다. 시끄러운 내 마음들도 견딜 수 없던 새벽들도 쉽게 일어나지 못했던 아침들도 멍하게 보내는 낮의 시간들도 결국 죽지도 않고 돌아온 어두운 밤들도 시간이 지나면 다 좋았던 때가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잘잘한 마음들에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비를 보고 있는 것도 좋아한다. 비 내리는 걸 보고 있자면 내 마음이 다 씻겨 내려가고 남는 건 감정이 사라진 내 마음뿐이라 그 고요함이 날 또 살게 한다. 시간이 흘러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감정들은 매 순간 바뀌겠지만 그 끝에 남는 조용하고 잔잔한 마음을 기억하고 중심을 잘 잡아 앞으로를 살아야지. 그렇다면 어디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다니는 내 마음들도 버겁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고요하다는 건 잔잔하고 조용하다는 것. 즐겁거나 또는 슬프거나 그런 어떤 마음이 깃들어진 게 아니고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다는 것. 큰 변화 없는 이 마음들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언젠가는 모든 게 지나가겠지. 시간 지나면 다 아무것도 아닐 마음들로 속 썩지 말고 굳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려 노력하지도 말고 그냥 그냥 고요하게 시간 위를 떠다닐 것이다.                                               


잔잔한 파도 끝에 남는 것은 고요한 물결들 뿐이니


사진 _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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