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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석 May 24. 2024

아버지가 아프시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정신질환 환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나는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중학교에 입학했다.


공부를 정말로 못했지만 그렇다고 열심히 노는 애도 아니었고, 아주 평범한, 아니 오히려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 어딘가 모자란 듯 한 학생이었다. 생각해 보면 중학교 1학년에 서초동에서 반포동으로 이사를 갔는데 그곳에서 적응을 잘 못했던 거 같다.  


학교별로 더 노는 학교, 덜 노는 학교의 순위가 있기 마련이다. 속된 말로 '어디가 더 양아치 학교라더라'라는 순위. 서운 중학교에서 신반포 중학교로 전학을 하기 전, 신반포 중학교는 무서운 학교라는 루머가 있었다. 지금은 주변이 모두 재건축해서 달라졌겠지만(이사를 간 곳은 현재의 원베일리가 재건축하기 전, 신반포 3차 아파트였다) 실제로 전학을 가보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싸움을 잘하는 친구들끼리 옆 학교와 한강변에서 집단으로 싸움을 벌이려다 선생님들께 발각되어 난리가 난 적도 있었다. 그때 몇몇 친구가 교실 뒤의 부러진 빗자루를 무기로 사용하려 들고나갔던 기억도 난다. 나로선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난 덩치가 꽤 컸음에도 불구하고 순하기 그지없어서 애들이 뭘 요구해도 들어주었고, 싫은 내색도 하지 못하는, 소위 말하는 호구였다. 지금 그런 일을 겪었다면 머리로 냉정하게 계산한 후 해도 괜찮다 싶으면 손이 먼저 나갔을 거 같다. 사람이 성정이라는 게 잘 변하지 않는 건 맞다. 하지만 시간의 힘이라는 건 보다 강력해서 타고난 본성마저 조금씩 변화시킨다. 성인이 된 나는 회사에서 몇몇 사람들에게 어딜 그 따위 태도로 일하냐고 눈앞에서 노골적으로 지적할 정도로 성격이 변해버렸다.


지금 수호를 보면 성격이 너무 순하다. 아무 이유 없이 미안하다고 하기도 하고 겁도 엄청나게 많다. 어린이집에서 발표하는 사진을 보면 몸을 베베 꼬면서 웃으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난 진심으로 호구 시절의 내 모습을 답습할 거 같아 조금 크면 종합격투기나 주짓수 학원을 보내려 계획하고 있다. 집 옆에 전 라이트 챔피언이 운영하는 복싱 학원도 알아봐 놨다. 아내는 "아니 누구 때리고 다니는 거보다는 낫지"라고 하지만, 나는 "아니 어디서 맞고 다니는 거보다 때리고 다니는 게 낫지"라고 한다. 이게 엄마와 아빠의 차이인가 보다.


근데 생각해 보면 둘 다 옳은 말이다. 맞아야 할 때는 맞고 때려야 할 때는 때려야 한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다 잘할 수 있도록 현명함과 건강함을 수호에게 선물하고 싶다.




이때즈음부터 아버지에게 안 좋은 증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숨이 안 쉬어진다고 하셔서 응급실로 가서 입원했던 적이 있었다.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하기도 하고, MRI로 온몸을 구석구석 촬영 해보기도 했지만 원인이 발견되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여러 대학병원을 다녀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병원에서는 신경정신과로 분류되어 정신질환으로 진료결과를 받았지만, 아버지는 인정하지 않으셨다. 현대 의학에서 정의되지 않은 어떤 병에 걸렸다고 말씀하실 뿐이었다.


원인은 모른다. 가끔 내가 뇌졸중에 걸려 충격을 받으신 것이 원인이었나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 때문인가',
'내가 좀 더 잘했더라면',
'내가 더 외롭지 않게 곁을 지켜줬더라면',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떠한 치료를 받게 해 줬더라면'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의 가까운 주변인들, 특히 가족들은 필연적으로 자책하는 과정을 겪는다. 하지만 우린 그런 생각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 일 뿐이고 우린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했을 뿐이다. 지금 하지 못해 후회하고 있는 어떠한 일을 과거에 했었더라도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후회는 스스로를 감정의 늪에 빠뜨릴 뿐이다. 부디 자책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특히 가족들이 겪는 감정적인 어려움이 있다. 환자가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고 치료에 협조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낫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그러한 태도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데, 그래서 가족들은 쳇바퀴 도는 듯한 답답함에 지칠 수밖에 없다. 결국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끝나지 않는 혼자만의 싸움을 하고 있는 듯한 생각에 무기력함에 빠져버릴 수 있다. 나 역시 경험한 감정이었다.


감히 힘내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도, 어떤 감정인지 이해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지도 않다. 부디 그럴 때일수록 스스로의 삶에 집중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울증이라는 괴물은 건강한 사람마저 집어삼킨다. 마치 지독한 감기처럼, 주변 가까운 사람들을 깊은 우울의 늪으로 끌어당긴다. 쉽지 않으시겠지만,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시고 스스로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나 같은 경우 운동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무너지면 우리 가족은 이대로 끝이라는 생각에 하루에 30분 이상은 반드시 운동을 하려 했고, 너무 바빠 힘들다면 잠깐이나마 주변 산책이라도 하며 햇빛을 쬐었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는 것이기에 몸을 먼저 움직이는 것을 꼭 권하고 싶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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