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이면 당신을 떠올려요 -최종화

35화

by 무유

35화

비가 오는 날이면 당신을 떠올려요 - 최종화


졸업을 하고 바로 연구소에서

인턴으로 잠깐 일을 했었는데,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선생님이 집에 갈 때 태워주시곤 했다.


연구소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엄마, 아빠뻘이고

젊다 싶으면

나이차이가 있는

사촌언니오빠뻘이었다.


태워주시는 분은

그래도 거기서 나이차이가

그나마 잘 안나시는 분이었다.


커리어우먼이었고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곤 했다.


결혼도 하셨고

아이도 둘이나 있고

그런 선생님에 비해

어리지만

20대 초반이었던

내 눈에는

보살펴주고 싶은

똑 부러진 어른이었다.


말수가 적은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는 게 좋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어려움이 있었다.


사회는 처음이었고

선을 넘으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때의 관심사는

하고 싶은 일,

글을 쓰는 일을

해도 될지


아니면

먹고사는 공무원이

되어야 하는지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고민 따위도 아니지만

당시에는

골똘히 생각해도 몰랐고

남의 조언을 들어도

모르겠다였다.


답을 얻지 못한 채

선생님한테서

상담을 하다 보면은

어느새 집 근처에서

인사를 하며

헤어지곤 했었다.


차에서 내리면

5시 46분에서

48분이 되곤 했는데


5시 50분이 되면은

발신자표시제한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엔 꺼름직해서

통화종료를 눌렀다.


어김없이 다음날도

50분이 되면은

전화가 왔었고


‘스팸인가?’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그다음 날도

전화가 왔었고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인가?‘



발신자표시제한이면

본인을 들키고 싶지 않고

나의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나의 첫사랑.


‘설마 첫사랑이라고?‘


‘그럴 수가 있나?‘


그럴 리가 없는 데였다.


다음 날도

50분이면 전화가 왔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통화버튼을 터치했다.


“여보세요”


기대반, 불안반이었다.


첫사랑이 맞다면

무슨 얘기를 할까,

그 얘기는

전혀 예상할 수가 없기에

불안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음성은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고

몇 초 있다가

그대로 끊겼다.


그다음 날도 걸려왔다.


“여보세요?”


인기척은 느껴졌지만

다른 말은 들려오지 않았고

다시 한번 뱉었다.


“여보세요?…”


뚝 끊겼다.

정말 미스터리한 일이었다.


첫사랑이 걸린 전화였을까,

다른 사람이었을까,


알 수는 없지만

첫사랑의 끝으로

나의 고백은 끝이 났다는 확실하다.


아직까지도.


몇 주가 지나지 않아서

발신자표시제한으로

오는 전화를 받지 못했다.


공중 화장실에서 폰을

변기에 퐁당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자켓 주머니가 헐거웠는지

스르륵 변기에 떨어져 침수당했다.


폰을 바꾸면서

번호도 바꿨기에

평일 5시 50분에

발신자표시제한으로

걸려오는 전화는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드라마와 영화의 결말에는

서로를 생각하다

깨달은 둘이 재회하면서

끝이 나지만,


현실에서는

문득,

지난날을 회상하며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라며

끝이 난다.


돌고 돌아 다시 만났으면—


돌고 돌아서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까?


아는 사람들은

아는 첫사랑이라,


첫사랑이 일하는 곳에 가면은

만날 수 있고

보면은

아직도 반하게 되는 사람이지만


연인이라고 하면은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 감정이 식지 않는다고 해서

이어지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이다.


서로 안 맞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정말 아이러니하다.


어렵고

나를 잘 안다고 여겼는데

또 모르겠다.


비가 내리면

그날이 떠오른다.

덤덤했던 감정과

위로받고 싶은 날이 되어버린다.


첫사랑과 봉사활동도

같이 할 수가 있었는데

피했다.

앞에만 서면

숨어버리고 싶어진다.


고백을 안 받아줬기에

창피함이 아닌

스스로가 떳떳하지 못한 창피함이다.


원하는 나로 살지 못하는

가면 속의 또 다른

나의 모습이

첫사랑 앞에서 보였다.


워낙 강인한 사람이지만,

첫사랑은 영원히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 사람의 행복을 빌며

나를 놓아줄 수 있게 된 지금,


비로소 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사랑이 말했던 이상형은

“웃는 게 예쁜 사람”이었다.


그 말이 나에게로 되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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