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36화 이 동굴은요, 아늑하고 좋거든요,
작년에 오빠가 결혼을 했다.
비혼주의자였던 오빠는
결혼을 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사람이라서
비혼주의자가 되었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식 전날 늦게까지
일을 하고 집에 들어와
밤을 새우고
이런저런 이유로
축의금을 받고 있었는데
입지도 않는 원피스에
밝은 웃음까지
장착을 하고
쉴 새 없이 뛰어다녔다.
그날만큼은 내가 누구였는지 모르겠다.
오빠가 놓치는 부분까지
신경을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못 보았던 친인척과
옛 지인들을 만나니 반가웠다.
평소의 나였으면
수줍음으로 미소만
지었을 텐데,
말도 술술 나왔다.
정작 나는
내가 누구였는지 몰랐으나,
사람들은 나를 좋아했다.
결혼하는 오빠보다 더.
결혼식이 지나가고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갑작스레 연락이 왔다.
일이 언제 끝나냐고
기다리겠다는 오빠와
사촌오빠였다.
뜬금없는 약속이었지만
반가웠다.
어릴 때는 할머니집에서
잡기 놀이도 하고
게임도 하고 놀았었는데
언제부턴가 난
동굴에 있었다.
어른스러운 바에 가서
좋아하는 위스키대신에
비싼 칵테일을 마셨다.
위스키를 워낙 좋아하지만
입맛이 싼 편이라
짐 빔 말고는 다른 건
입에 안 맞아서
비싼 거 사준다고
평소에
마시지 않는 칵테일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 달라진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술술 하고
조그만 감정도
크게 부풀려지고
낯가림은 전혀 없어지는 편이라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사촌 오빠가
이제는 나오라고 말을 꺼냈다.
혼자 있지 말고
같이 캠핑도 가고
낚시도 하러 가자고 하는데
동굴 문이 잠깐 흔들렸다.
괜히 딴말을 했다.
“오빠도 결혼했잖아”
라는 말에
망설임 없이
괜찮다고
다른 사촌들이랑
간다고 하는데
솔깃했다.
다른 말로 돌리며
올해 안에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자며
판다월드에
판다 보러 가기!를 외치고
오빠들의 말을 듣는 척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래 본 사람들은
내가 만든 동굴이 보이나 보다.
사실 나오라고 했을 때 놀랐다.
들켜버린 거 같아서
뭐, 숨길 필요는 없지만
아주 예전에 이모도 그렇고
은연중에 숙모와 삼촌도 그렇고
사촌들도 그렇고
이제는 나오라는 말에
밖에서도
그 동굴이 보이고
있었나 보다.
마음 한쪽이 움찔하다가도
일상이 흘러가면
또 깜깜무소식이 된다.
아직은 혼자 있는 동굴이 좋다.
예전 대학친구는
“집에 꿀단지가 있는 거야?” 라며
말했지만
이 동굴은
밖에서 아무리 소리 질러도
들리지 않고 편안하다.
생각이 많아질 때도
동굴에 들어가
한참 동안 나오지 않는다.
슬프거나 울고 싶은 일이 있으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울어도 괜찮다.
남들 눈에는
깜깜무소식한 이 동굴이
어둡고 서글퍼 보이겠지만
동굴 안에서 무지개를 펼치고 있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을
무수히 느끼고 파악하고
아늑하며 따뜻하다.
괜찮다면
언젠가,
이 동굴을
기다려줬던
소중한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날이 오지 않을까,
꼭
소개할게요,
괜찮아요 전 괜찮아요.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