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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Sep 20. 2021

에필로그

LP판을 꺼내며

내 야망은 아무도 날 못 알아보는 거야
그런데 내 노래로 밥 벌어먹고 사는 거야


이미 10년 이상 많은 노래를 짓고 불러온, 작년 이맘때부터 싱어게인 30호 가수로 세상에 더 알려지기 시작한 싱어/송라이터 이승윤이 3년 전 쇼쏭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노래로 살아갈 수 있는 삶, 너무 유명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상황이 허락되는 것은 아마도 많은 예술인들이 바라는 삶일 것이다.

이러한 삶을 바라고 있다는 건, 많은 이들이 알아볼 만큼 대중적으로 유명해져야만, 자본이 쓰일 만큼 대중성이 있어야만, 또 그 한 사람이 세상에 얼굴을 알릴 만큼 '유명'해져야만 예술가들이 먹고살 수 있는 구조라는 반증이 아닌가 한다.


본인에게 주어진 재능을 마음껏 펼칠 자유와 시간이 확보되면서도 삼시 세 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예술가들이 많아지는 세상함께 만들어 갈 수는 없을까?

공감해주는 노래에 기대어 글을 쓰면서 직접 등을 쓸어주며 위로해주는 한 사람의 몫 이상의 역할을 해주는 노래들이 더 많이 창작되고, 더 많이 들려지기 위해서 어떤 환경이 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첼리스트의 딸로 태어나 손을 다쳐 첼로를 그만두기 전까지, 한동안 첼로 전공자로 살았던 시간이 있었다. 독일의 한 학교의 음대생으로 지내면서 행복과는 거리가 먼 의무감으로 연습을 하고, 연주를 하며 살았던 기간이 있었다. 너무나 당연히 평생을 첼리스트로 살 줄 알았던 시간들. 그때는 나와 비슷하게 클래식 음악가의 아들 딸로 살았던 친구들이 아닌, 음악이 너무 좋아 혼자 고학을 하는 동료들을 보면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나의 부모로부터 주어진 재능과 서포트해주시는 재정을 등에 지고도 어떻게 하면 첼로를 하지 않고 살까를 궁리하고 있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아무도 서포트해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밤낮으로 아르바이트 한 돈을 모아 언제 돌아가야 할지 모를 유학생활을 근근이 이어가는 동료들을 보면 너무나 죄책감이 들었다.


그땐 너무 어렸기에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미안함을 가지고 밥 한 끼 대접해주는 것 말고는.

나는 꾸역꾸역 하기 싫은 시간을 채워가고 있는데, 1년간 모은 돈이 다 떨어져서 음대에 입학조차 못하고 돌아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건 뭔가 잘못된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 저런 친구들이 마음껏 꿈을 꾸고 그것을 펼칠 환경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바꿀 수 있다면 바꾸고 싶은데, 내가 돌아가고 친구에게 내 환경을 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게 괴로웠다.


예술인들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카페에 앉으면 흘러나오는 음악이 없다면, 늘 가는 공원에 매일 보는 그 조형물이 없다면, 출퇴근하는 건물 그 자리에 그 그림이 없다면, 사진이 없다면, 아름다운 건축물이 없다면, 과연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

예술은 긴 시간의 고민과, 고뇌와, 실패와, 눈물과, 끈기와, 노력과, 기쁨과 열정.. 그 모든 것에서 탄생한다.

엔터테인먼트의 자본을 통해 탄생하는 작품들에 대해서도 존중하지만, 홀로 외로이 시간과 싸우며, 삶을 근근이 지탱하면서도 결코 놓을 수 없어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탄생하는 작품들 역시 유명과 무명으로 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예술가 이승윤이 지금의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긴 시간의 고뇌를 버티고 버텨주었기 때문이다. 끝까지 노력해보고도 되지 않으면 2021년 12월 31일에 음악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나왔던, 10여 년의 방구석의 삶이, 수없이 지은 노래들이, 어떻게든 공연을 하고 싶어 '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장과 지원사업에 메일을 쓰고 또 쓴 숱한 날들이, 끝까지 거부하고 싶어 밤늦도록 고민한 그 치열함이, 지키고 싶었던 자존심과의 싸움이 없었더라면, 지금 현재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는 그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프랑스에는 예술인들을 위한 연대와 제도들이 있다.

프랑스에만 훌륭한 예술인들이 태어나고, 그들이 모여 사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가지고 있는 예술성을 발휘할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예술을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가치로,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로 존중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예술가가 먹고살 수 있도록, 사회가 함께 보호해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불규칙한 임금, 불안한 미래, 재능을 발휘할 수 없는 공간이 그들을 더욱 깊은 사유로 이끌고 그 사유들이 엄청난 작품들을 만들어내게도 하지만, 더 이상 그냥 이대로 두지 않았으면 한다. 곡을 만들고, 연습을 하고, 합주를 하면 좋을 시간에 지원사업을 찾고, 서류를 쓰고, 5만 원에 전국을 다니며 이름을 알려야 하는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좋겠다.


잠시 예술인으로 살았다가 이제는 자리를 돌려준 한 사람으로서, 한 자리만큼의 몫을 충만히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을 만나 빛을 낼 수 있도록 함께 하고 싶다. 구체적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정말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당장 홀로 구조를 바꿀 수 없고, 후원할 수 있을 만큼의 단체를 운영할 수는 없겠지만, 단 한 명이라도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시작하는 조그만 일들을 통해 내 주변의 예술인 한 명이 날개를 달았으면 좋겠다.

날개를 달고 그들의 작품을 꼭 만나야 하는 이들, 보아야 하는 이들에게 들리고 보이는 정도의 자유를 누리면서도 지붕 있는 집 안에서 삼시 세 끼를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세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귀한 존재로 존중받으며 자신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공간들이 열리기를.

노래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작품을 만들고, 춤을 추고, 시를 쓰고, 꿈을 꾸고.. 그렇게 조금씩 한 명 한 명.. 더 함께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바란다.


우리 각자가 내 주변의 예술인 한 명씩을 응원한다면,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면 어떤 세상이 될까?



음악을 너무 사랑해서 차마 차선책으로 할 수는 없었기에 2020년 12월 31일까지 최선을 다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완전히 그만두려 했다는 이승윤.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에게 고마운 지점은 예선에서 이 사람을 발견해주었다는 것, 그리고 계속 음악을 할 수 있는 날개를 달아주었다는 것이다. 보석같이 숨어있는 또 다른 30호들이 있을 것이다. 주단을 딛고 걸어오면 그들의 멋진 세상을 맘껏 펼치며 세상을 따뜻하게 할 수많은 72호들이 있다.

세상을 아름답게, 세심하게, 때론 아프게 바라보며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해주는 모든 예술가들을 위하여, 그들이 더 이상 먹고 살 걱정 때문에 포기하려는 마음을 먹지 않도록 무언가를 좀 해봐야겠다고 다짐한다.

우선 가능한 상황이 열릴 때마다  공연에 가고, 전시회에 가고, 굿즈를 구입하고, 작품을 구입하자.


공감해주는 노래에 기대어 써갈 노래가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으며, 공감해주는 그림에, 글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는 삶이 조금 더 열리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으며 LP판을 내린다. 곧 다시 새로운 LP를 올릴 날을 소망하며.


[함께 봐요]

https://youtu.be/S_LmI3G-dX4

쇼쏭 유튜브 채널 | 이승윤 인터뷰 - 내 야망은 아무도 날 못 알아보는 거야 30호 가수


[함께 고민해요]

https://www.lamaisondesartistes.fr/

https://blog.bokjiro.go.kr/291

https://www.ytn.co.kr/_ln/1210_201804140948128630

https://brunch.co.kr/@sballet/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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