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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Dec 23. 2022

나는 금이 간 영혼을 사랑해

김정란, <나비의 꿈>에 기대어

나비의 꿈


                                                      - 김정란


나비를 보았다.


깊은 밤, 내 숨소리 허공을 향해 올라갔을 때.


우리의 기질이 나비의 날개를 가진다면


우리는 다만 있는 일만으로 족하리라. 왜냐하면

버려버릴 것을 모두 가벼운 날갯짓으로 벗어버린 뒤에


우리는 알몸으로 비로소 남아 있을 수 있으므로.


그때에 내가 내 육체를 향해 새삼스러이 말을 걸리라.

"안녕! 예쁜 나여!"


나비는 언제나 내 영혼의 깊은 곳을 찾는다. 그가 말했다.

"가능하면 더 깊은 곳을"


어느 날인가 나는 그가 수줍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금이 간 영혼을 사랑해."


어째서지?


"잘 몰라, 하지만 어쨌든 그들에게선 좋은 냄새가 나."


그리고 그는 날아갔다.


나는 덜덜덜 흔들렸다.


그리고 조금 뒤엔 바람이 칠흑이 그리고 핵이 남았다.


꿈꾸는


나는 나비를 보았다, 아니 오히려 가졌다.

<

내가 모든 여행길의 돌짝밭에서 돌아올 때 

조심스러운 비상으로


다시 시작하는 나비.




나는 금이 간 영혼을 사랑해.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소곤거려주는 느낌이었다.

내 주변에 있는 소중한 이들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단어들을 찾은 것 같았다.

금이 간 영혼.

수줍게 금이 간 영혼을 사랑해.라고 말하는 화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어떤 기회에 문장 완성 검사라는 걸 하게 되었다.

해석된 결과는 아직 모르지만, 써 내려간 문장들 안에서 여러 금이 간 영혼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 그어진 금이 킨츠키 공예처럼 채워져 있는 것도 보였다.

금이 간 영혼을 그대로 두면 계속 깨어져 가지만, 그 영혼이 사랑을 받으면 또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


잘 몰라, 하지만 어쨌든 그들에게선 좋은 냄새가 나.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다 보면 유독 금이 간 영혼들이 눈에 띈다.

누군가는 물었다. 왜 그런(?) 아이들을 곁에 두냐고. 

농담처럼, 나도 교수님이랑 친하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냐며 웃는 직원 분도 계셨다.

잘 모르지만, 어쨌든 끌리고, 사랑하게 되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아이들.

이 시는 나에게 또 가르쳐 주었다. 아, 나는 그들에게서 좋은 냄새를 느꼈구나.

어쩌면 내가 금이 갔었기에, 그 금을 메꾸어 준 사랑을 만났기에, 좋은 냄새가 나는 아이들의 금을 나도 메꾸어주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시집 앞에 쓰인 김정란 시인의 자서를 읽으며 참으로 만나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의 시들은 고요히 조용히 곁에서 등을 쓸어주는 새벽 같다.

나 또한 참 오랜 시간 나를 못났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제대로 잘하는 것도 없고, 자신 있는 것도 없고, 이것 저것을 건드려보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도 못하는 것 같은 한심함.

예쁘다는 말과는 거리가 먼 외모와 걸음걸이, 말투, 웃음소리.

하지만 요즘의 나에게는 새삼 스러이 말을 걸어본다.

조심스러운 비상으로 다시 시작하는 나에게.


방학을 지나 새로이 만나게 되는 학기에도 금이 간 영혼들이 있겠지.

좋은 냄새가 날 그들이 기다려진다.




[함께 읽기]  『다시 시작하는 나비』, 자서, 최측의 농간, 2019년 4월 25일.


자서


  참으로 늦게, 게으르게 걸어왔다. 늘 자신 없음으로 시달리며. 그러 삶이여, 내가 얼마나 그대를 사랑했던가. 가슴을 세월의 날선 칼들이 찢어발길 내가 맨몸의 치열함으로 마주 수밖에 없었으므로, 아픔의 일회의 신선함들을 나는 그대에게 내보인다.

  오랫동안 내 작은 골방에 처박혀 있던 그것들은 바깥으로 끄집어내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어쩌면 차라리 늘 그래왔던 대로 숨어 있는 편이 나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픔들은 그대들을 만나러 간다. 왜냐하면, 그대들의 아픔들 또한 나에게로 걸어오고 있는 것을 그것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89년 11월

김정란


서울 출생.


197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다시 시작하는 나비』 , 『매혹, 혹은 겹침』 , 『그 여자, 입구에서 가만히 뒤돌아보네』 , 

『스•타•카•토 내 영혼』 , 『용연향』 , 『꽃이 신비』가 있다.


                     


[함께 보기] 깨어진 그릇의 재탄생, 킨츠키 공예

https://www.byseries.com/Content/6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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