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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Mar 29. 2021

드디어 알아들었구나!

소소한 삶의 이야기 #3

사실, 첼리스트가 되겠다는 결심보다는 한국에서의 삶에 대한 도피로 독일행을 결정했었다.

유럽으로 유학을 가는 게 어떻겠냐는 아빠의 권유.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과 연이은 대학 입시 낙방으로 지치고 한껏 풀이 죽은 나에게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OO첼리스트의 딸이 한국에서 잘 안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보다는 "그 아이 유학 갔대!"라는 말을 듣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나의 고향이자 아빠의 유학 장소인 오스트리아로 갈 것인지, 아니면 아빠가 자리 잡으려 하셨던 독일로 갈 것인지 이런저런 고민 끝에 결국 독일로 결정이 되었다.

너무 급박하게 결정이 되어서 친구들과 제대로 된 송별회도 하지 못했다.

물론, 그다지 기쁘고 멋지게 떠나는 길이 아니었기에 송별회를 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그렇게 나의 의지가 아닌 아빠의 권유와 나의 도망가고 싶은 마음으로 인한 도피성 가득한 독일 유학생활이 시작되었다.

20살, 나이는 성인이었으나 아직 정신적으로 성인이 되지 못한 나에게 홀로 떨어지는 경험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처음 보는 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처음 듣는 억양과 발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티브이에서 보는 것 같은 멋들어진 유학 생활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다.

문화적인 충격에 더해 인생 자체에 대해, 나의 앞 날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인지적 충격도 많았다.


도착하자마자 며칠 후, 거리에서 너무나 충격적인 첫 경험을 했다.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옷가지, 멀찍이 놓인 악기 케이스.

몇몇 연주자가 빛바랜 악기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표정의 연주자들의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고,

발걸음을 멈춘 채 서로 기대어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도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내가 받은 충격은, 춤 때문도, 연인들의 사랑의 속삭임 때문도 아닌

그 연주자들의 연주 실력 때문이었다.

모자에, 악기 케이스에 관람료를 받으며 연주하는 그분들의 실력은 내가 평생 쌓아온 실력보다 월등했다.

그들의 리듬과 음정은 너무나 정확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며 정말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잘하는 사람들도 길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거지?


그다지 실력이 없는, 첼로를 사랑하지도 않는 첼리스트 지망생.

물려받은 재능 하나로 버티고 버티다 결국 대학 낙방으로 도망 온 유학생.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하나 되어 길에서 연주하고 있던 그 연주자들 앞에서 너무나 초라한 생각이 들었다.

왠지 나는 첼리스트가 되려는 꿈을 접어야 할 것만 같았다.


무대에서 손을 다쳐서 첼로를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에겐 두 가지 감정이 휘몰아쳤다.

첼로 밖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는데 도대체 무얼 하며 살아야 할까? 

이젠 드디어 첼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구나!


사라 장은, 장한나는 악기를 너무 사랑해서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지.
연습도 재능 중 하나라는데, 왜 나는 연습이 이다지도 싫을까.


매일매일 고민하던 생각의 줄이 팅,  하고 끊어지던 날

'시원섭섭함'이라는 건 바로 이런 상태를 말하는 거구나 깨달을 수 있었다.



20여 년 만에 아빠께 다시 레슨을 받기 시작한 지 벌써 두 달이 지나간다.

자주 할 수 없고, 갈 때마다 길게 할 수 없지만 새롭게 첼로를 알아간다.

사라 장의 마음, 장한나의 마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할 수만 있다면 첼로를 끌어안고 자고 싶다.

아직 길게 연습할 수 없지만, 자투리 시간을 내어 계속 첼로를 잡아본다.

잊었던 악보들을 꺼내어 다시 연주해본다.


지난 레슨에서 아빠가 그러셨다.

이제 드디어 알아들었구나!


어린 시절, 연습해도 해결되지 않던 부분이 갑자기 되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첼리스트가 아닌데, 이제는 아마추어 중의 아마추어인데.

어린 시절 아빠의 이야기에도, 독일 유학시절 교수님의 이야기에도 이해되지 않고 해결되지 않던 부분이

이제야 알아들어지기 시작한다.

알게 되니, 연주가 되기 시작했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연습을 통해 머리로 알게 된 것이 마음으로 깨달아진다는 것은, 그리고 그것이 손을 통해, 팔을 통해,

온 몸과 온 맘을 통해 표현되는 것은 이렇게 환희가 가득 해지는 것이었구나!


더 알아듣고 싶다.

아빠가 더 나이 들어가시기 전에, 내 손이 더 굳어지기 전에.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다시, 그렇게 시작한 나의 첼로 여정.

길에서 만난 연주자분들의 표정으로,

나도 언젠가 길에서 케이스를 한껏 열어두고 연주를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다음 레슨이 또 기다려진다. 세상에.


[이전 글, 다시 시작한 첼로 레슨]

https://brunch.co.kr/@gnade10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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