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 차게 시작한 연재를 접고 브런치북은 나중에 엮기로 한 후 그럼에도 일주일에 글 하나는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생각이었나.
4, 5차 항암을 마친 후 후폭풍에 시달리며 글을 쓰기는커녕 읽기조차 힘든 시간을 보냈다.
현재 몸 상태는 이러하다.
온몸에 저림 증상, 혀에는 왁스를 칠한 것 같은 감각과 맛, 가만히 있어도 흐르는 콧물(코털이 다 사라진 후 저항 없이 콧물이 흘러내린다), 오심과 구토증세.
그동안엔 손과 발이 저렸는데 이제는 발바닥부터 무릎 위에까지 저린 감각이 하루 종일 지속되고 있다.
손톱에는 검은 줄이 생기고 표면이 울퉁불퉁해졌다.
이러다 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아직 그 정도까지 손상되지는 않은 듯하다,
무얼 먹어도 맛이 없는 것에 더해 쓴 맛이 심화되어 느껴진다.
즐겨 먹던 라테도 너무 써서 먹을 수가 없고, 심지어 과자와 아이스크림에서조차 쓴 맛이 난다.
충격적인 건, 내 사랑 루꼴라도 너무 써서 먹을 수가 없다는 것,
소울푸드가 두렵게 느껴지다니 항암제는 정말 강력한 존재다.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건 귤종류이다.
밥을 세 숟갈 정도 먹으면 더 이상 먹기가 힘들어 귤로 먹은 것들을 눌러주며 버티는 중이다.
감사하게도 나의 상태를 알게 되신 지인분들이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종류의 귤을 보내주셔서 귤, 천혜향, 레드향, 한라봉 등등 다양한 비타민씨를 섭취하고 있다
항암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는 나를 보던 혈액종양내과 교수님께서 그러셨다. 술, 담배를 빼고 먹을 수 있는 모든 걸 어떻게든 먹으라고. 먹어야 산다고.
당뇨가 있어 평소에 잘 먹지 못하던 과일을 이렇게라도 먹고 있으니 기쁜 시절이다.
그래도 다음 주면 독성항암을 마친다.
6차 만에 독성항암을 마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죽을 만큼 힘들지만 무엇에라도 '끝'이라는, '마침'이라는 것이 있다는 건 일단 힘이 된다.
물론 항암 후 3월 5일에는 수술이, 수술을 마치면 2주 후부터 후항암과 방사선이 기다리지만 그렇게 멀리까지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우선 다음 주 마지막 선항암을 기뻐해야지.
암진단 전에는 차마 알 수 없던 수많은 감각과 감정들을 알게 되어 너무 힘들기도 하고, 또 그만큼의 경험이 인생에 추가되어 감사하기도 하다.
6차를 마치는 날은 어떤 감정이 느껴질지 기대한다.
요즘 메이 작가님의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를 읽기 시작했다. '앓기, 읽기, 쓰기, 살기'라는 부제에 이끌려 구입했다. '아픔'이라는 단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유할 수 있고 조금은 공감이 가능한 단어일 텐데 그 정도와 통각의 정도, 표현의 정도에 따라서 전혀 공유와 공감이 되지 않는 단어이기도 하다.
암을 진단받는 과정 속의 경험과 그 감정들, 항암의 고통과 통증, 앓는 긴 밤에 대한 감각, 이렇게는 살기 싫지만 그럼에도 살고 싶은 모순적인 마음들. 이런 감각은 실제 암환자들이 공통적으로 겪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또 너무나 각자에게 다른 경험일 것이다. 그리고 이 경험과 감각은 당사자가 아니면 듣고 읽고서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다.
암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집어 들지 않았을 책을 만나 읽고 있는 순간, 한 글자 한 글자를 깊이 읽을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든다. 1차원적으로 생각하면 암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또 왔기에 감사한 일들이 있다. 한낮에, 방학 맞은 다 큰 아들 둘을 양팔에 두르고 침대에서 뒹군다거나, 우리 집 귀염둥이 강아지 꼬미가 내민 귀엽고 보드라운 배를 쓰다듬는다거나 하는, 빠박이가 되어 남편과 같은 비니를 쓰고 킬킬거린다던지 하는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건 너무 좋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