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편지
I스쿨 친구들에게.
사랑하는 여러분, 세계시민교육 이번 학기 마지막 수업에 온 것을 환영해요.
지난주에는 불볕더위를 이야기했는데, 이번 주는 엄청난 비가 오고 있네요.
엄청난 장마가 온다고 했다가, 장마가 이제 끝났다고 했다가, 다시 장마가 온다니.
삶이란 아무리 여러 사람이 다양한 도구를 가지고 예측을 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그 무엇도 완전히 예측하거나 대비할 수 없기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지난 편지에서 S 친구가 나눠준 이야기 중에 의사 선생님이 나으려면 마취 주사를 <버텨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는 게 기억에 남아요. 낫기 위해 버티는 것. 성화되기 위해 우리의 삶에 오는 다양한 아픔과 고통을 버티는 것. 결국 큰 수술 끝에 나아서 우리 앞에 있는 S친구를 보며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어려움이나 고통을 버틸 힘을 얻을 수 있으니, 우리 모두는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공동체라는 생각이 들어요.
K 친구가 <계속 조심은 해야 한다>라고 해 준 말도 울림이 있었어요.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지만,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로 각자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조심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지금 제게도 너무 중요한 말을 친구들이 해주어 고마워요.
암이라는 걸 지니고 살아간다는 건 어떤 면에서 아직 터지지 않는 폭탄을 안고 사는 것 같이 여겨질 때가 있거든요. 항암제가 암을 없애지만, 다양한 후유증을 남기기 때문에 지금 이 편지도 병원에서 쓰고 있어요. 지금 쓰는 표적 항암제가 말초와 점막에 염증을 일으킨대요. 손끝과 눈 속에 염증이 많이 생겨서 타이핑을 하려니 많이 아파요. 조금 후 진료실에 들어가면 손 끝에 주사를 맞아야 한 대요. 너무 아프겠지만, 낫기 위한 과정이니 S 친구처럼 잘 참아볼게요. 낫기 위해 참고, 다시 재발하지 않기 위해 계속 조심을 하는 삶. 여러분을 생각하니 그렇게 해볼 힘이 납니다.
저도 어릴 적 따돌림을 받았던 적이 있어요. 그때 저도 J 친구처럼 책을 친구 삼아 지냈답니다. 10년이 지나 지금은 굉장히 빨리 읽을 수 있고 글을 잘 쓰게 되었다는 걸 깨달은 J 친구는 정말 대단해요! 저도 그때의 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친구가 책 밖에 없어서 매일매일 책을 읽다 보니 저도 책을 빨리, 정확히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책이 너무 좋아서 궁금한 분야를 책을 통해 즐겁게 배우다 보니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수업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거든요. R 친구처럼 발표를 정말 싫어했어요. 누군가가 저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저는 ‘디비디비딥’이나 ‘수건 돌리기’ 같은 게임도 너무 싫어했어요. 그리고 일생에 단 한 번 반장 선거 때 추천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당선을 위한 공약 발표를 하는 게 너무 싫어서 기권을 하기도 했답니다. (지금은 기회를 놓친 게 너무 아까워요!!) 그런 제가 이렇게 가르치는 사람이 되다니, 정말 인생은 날씨처럼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요?
여린 마음 덕분에 성장했다는 C 친구의 이야기도 깊이 와닿았어요. 저야말로 유리멘털이었거든요. 성인이 되어서도 툭하면 울어서 너무 부끄러웠어요.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가장 먼저 들고요. 하지만 여린 마음 덕분에 누군가의 감정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세심하게 주변을 돌볼 수 있는 능력도 생긴 것 같아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취미생활을 하는 Y 친구도 정말 멋져요! 스트레스는 우리 삶에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인데, 그걸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질이 달라지거든요. 요즘 저도 암이 주는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어요. 몸을 쭉쭉 펴고 스트레칭을 하다 보면 안 쓰던 근육을 쓰느라 몸은 조금 힘들지만 마음이 쭉쭉 펴지는 느낌이에요.
J대 선생님들의 이야기도 감사해요. 그 시기들을 잘 지나 이렇게 멋진 신학교 학생이 되어 우리 학교에 와주셔서 감사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일들이 때로는 우리를 슬프게 하고, 절망에 빠뜨리는 것 같기도 하고,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괴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돌아보면 결국 그 일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룬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의 삶이, 우리를 보시며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라고 기록할 수 있을 이야기가 될 거라는 사실을 우리 함께 꼭 기억해요.
이제 방학이네요! 방학 때는 무얼 하며 지낼 계획인가요?
우리 같이 계속 글로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써보고 싶었던 이야기들, 가장 잘 쓸 수 있는 이야기들을 계속 나눠주세요.
그 이야기들 들으며 저도 힘을 내볼게요.
사랑하고, 보고 싶어요.
다음 학기에는 꼭 얼굴 볼 수 있기를!
여러분의 편지로 힘을 잔뜩 얻은
송아 선생님으로부터.
p.s. 오늘의 사진은 <힘내라, 힘!>이라는 그림책의 표지와 내용이에요. 우리 같이 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