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까지 남은 기한 1시간 3분,

드디어 박사과정 코스웍을 마쳤다.

by Sonia
드디어 마쳤다.
지난 2년 반 동안 일하며,
아이들 키우며 들었던 박사 과정 코스웍을.



석사를 마치고, '과연 내가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어서 박사 과정에 지원을 했다. 엄청난 논문을 쓰겠다, 학계에 획을 긋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기는커녕 어떻게든 부족함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1학기에 과정을 시작한 직후에는 앞 날이 캄캄하여 과연 마칠 수 있는 걸까 싶었는데, 휴학만은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버텼더니 끝이 오기는 왔다.


공부를 하는 중간중간, 이 나이에, 이런 상황 속에 나를 위한 시간을 내어 공부를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고민이 되었다. 해야 할 일과 집안일을 하다 과제가 쌓이고, 밀려들어오는 읽기 자료들을 온전히 다 소화를 하지 못한 채 덮어야 할 때는 비싼 등록금이 아까워서 속상하기도 했다. 사실, 학자금 대출이라는 제도가 없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 갚지도 못한 상태에서 또 한 학기의 빚을 쌓아가는 것이 옳은지 매 학기 고민을 하며 지금까지 왔다.

게다가 나의 연구분야는 사람들이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분야이다. 변방에서도 더 끝 어디쯤에 있는 나의 주제. 앞으로 이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도 소원해 보인다. 사실 효율성, 경제성 면에서 보자면 얼른 그만두고 기업 강의에 올인을 하는 것이 낫다. 그렇게 한다면 통장에 찍히는 숫자의 길이가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만둘 수가 없다. 이 일을 할 때 가슴이 뛴다. 살아있는 것 같다.

통장 잔고는 늘 간당간당하고, 매 달 새로운 고민들이 쌓여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하는 것이 좋다. 경계인으로 살며 문화와 문화 사이에 서 있으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독특성을 발견하고, 다양성 안에서의 조화와 상생을 고민하는 것. 그 기준과 철학을 세워나가기 위해 오래 전의 문헌들을 찾아 헤매고 보석을 발견해서 읽는 것. 시대의 아들로서 과거를 살아간 이들의 글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잇는 작업의 시도.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하등 쓸모없어 보이고, 결과물도 바로 나오지 않을 이 작업이 나는 너무 좋다.

사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 안에서 답이 나오지도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저 먼 길을 걸어가야 하는 누군가가 밟을 수 있는, 한 걸음을 더 내딛을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한 개의 징검다리를 든든히 놓기 위한 첫 삽이 뜨였고, 이제 학위논문이라는 커다란 산이 새롭게 눈앞에 펼쳐져 있지만, 이 또한 그만두지만 말자라는 생각으로 버텨보려 한다.


바흐는 18세기 동안 그 시대의 선호되던 음악적 경향에서 벗어나면서 단지 몇몇 지역과 음악가들 사이에서 기억되고 그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역사의 뒤안 길에 묻혀있던 그는 19세기에 미학적, 사회적 수용관의 변화 가운데 역사주의적,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재조명되어 다시 빛을 발하게 되었다.

1829년 베를린 공공 연주회에서 이루어진 멘델스존의 <성 마태 수난곡> 초연은 재조명 작업 촉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동시에 음악사적 큰 의미를 갖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게다가 멘델스존은 바흐를 단지 옛 대위법 양식의 종교음악 작곡가로 국한시키지 않고 대중에게 이끌어 내어 소개했다는 점에서 19세기 바흐 르네상스의 촉매자라 할 수 있다. 슈만도 멘델스존을 독일에 바흐를 다시 인식시킨 제 일인자이자 바흐 르네상스 운동의 선구자로 꼽았다.
- 신혜영(2007), 한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멘델스존과 J. S. 바흐" 중 발췌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Bach의 진가를 발견하여 세상에 소개한 것은 Meldelssohn이었다. 자신의 시대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하던 바흐의 마태수난곡은 헐 값에 넘겨진 푸줏간 포장지로 멘델스존을 만나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후대의 음악가들은 바흐의 음악 안에 담긴 것들을 사용하고, 차용하고, 변형하며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 갔다.

지금 빛을 발하는 이들은 결국 앞서간 누군가의 고민을 딛고 선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당대에는 관심받지 못하고, 가난하고 쓸쓸히 살았던 예술가들의 치열한 고민과 자신에게 주어진 눈앞의 일에 대한 그치지 않는 욕심이 무언가를 세상에 드러내는 역할을 한 것을 본다.

많은 이들에게는 아니더라도, 나도 누군가 한 명에게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힘을 내어 보려 한다. 푸줏간 포장지로 쓰일 정도도 되지 못할 연구일지라도, 누군가가 디딜 수 있는 작은 역할을 감당하고 싶은 욕심을 내본다.


코스웍은 끝났다. 더 이상 내게 '마지막까지 남은 기한'을 지정해 줄 강의가 없다.

이제는 스스로 타임라인을 설정하고 천천히 우직하게 걸어갈 길이 열렸다.

홀로 가야 하나 결코 혼자 할 수 없는 일. 읽어야 할 자료들을 잘 만날 수 있기를, 함께 고민할 연구자들을 만날 수 있기를, 우선순위를 잘 설정할 지혜가 주어지기를, 계속 가슴 뛰는 열정이 유지되기를 바라고 바란다. 계속 발견되는 부족함을 채워가며, 그렇게 조금씩 자라나다 우연히 발견할 누군가를 만나 그에게 도움이 될 무언가를 할 수 있기를.


워킹맘 파이팅, 일하는 연구자들 파이팅!

아르바이트하며 공부하는 학생들 파이팅!

가난함을 곁에 두면서도 예술가의 길을 걷는 이들 파이팅!

이 세상을 하루하루 꾹 꾹 눌러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 파이팅!


[함께 듣기]

https://youtu.be/PkZW7hbdaGk

자막이 함께하는 영상

[원본 영상]

https://youtu.be/ZwVW1ttVhuQ

#연구 #논문 #코스웍 #박사학위과정 #다문화상호문화연구 #바흐 #멘델스존 #마태수난곡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