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박사과정 코스웍을 마쳤다.
드디어 마쳤다.
지난 2년 반 동안 일하며,
아이들 키우며 들었던 박사 과정 코스웍을.
바흐는 18세기 동안 그 시대의 선호되던 음악적 경향에서 벗어나면서 단지 몇몇 지역과 음악가들 사이에서 기억되고 그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역사의 뒤안 길에 묻혀있던 그는 19세기에 미학적, 사회적 수용관의 변화 가운데 역사주의적,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재조명되어 다시 빛을 발하게 되었다.
1829년 베를린 공공 연주회에서 이루어진 멘델스존의 <성 마태 수난곡> 초연은 재조명 작업 촉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동시에 음악사적 큰 의미를 갖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게다가 멘델스존은 바흐를 단지 옛 대위법 양식의 종교음악 작곡가로 국한시키지 않고 대중에게 이끌어 내어 소개했다는 점에서 19세기 바흐 르네상스의 촉매자라 할 수 있다. 슈만도 멘델스존을 독일에 바흐를 다시 인식시킨 제 일인자이자 바흐 르네상스 운동의 선구자로 꼽았다.
- 신혜영(2007), 한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멘델스존과 J. S. 바흐"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