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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Sep 29. 2023

명절 난민

명절날,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나란 사람.

누군가 조상님께 은혜받은 자는 명절에 외국에 가고 조상님에게 은혜받지 못한 집만 집구석에 모여서 니탓내탓하며 제사를 지낸다는데 나에게는 니 탓 내 탓할 조상님도 명절에 외국에 보내줄 은혜로운 조상님도 안 계신다.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 조부모님들은 돌아가셨으며 - 어머니가 재혼하신 탓에 명절에 갈 내 집이라고 부를 곳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명절 당일이면 남편 곰씨는 시댁에 간다. 곰씨의 아이들을 만나러.

곰씨는 나와의 결혼이 두 번째 결혼인데 첫 번째 결혼에서 딸이 둘 있다. 아이들을 만나러 곰씨는 시댁에 가고 나는 명절에 텅텅 빈 서울에서 혼자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명절이 한참 되었다.


나의 명절 행사는 바로 예술의 전당에 가서 전시 보기이다. 참으로 고맙게도, 예술의 전당은 명절 당일에도 월요일이 아니라면 쉬지 않으며 콘서트홀에서 공연은 없지만 사진이나 그림 전시는 계속하고 있다.

텅텅 빈 서울과 다르게 의외로 제법 사람이 많다. 나 같은 명절 난민들이 모여 모여 이곳에서 사진이나 그림으로 위로받는 것이다.


나 같은 명절난민들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명절 난민들은 보통 나처럼 너무 지나친 핵개인의 시대의 아메리칸 스타일의 가족이던 다른 이유에서 서울에 남아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아니면 서울이 집이거나.


추석은 그래도 날씨가 괜찮아서 덜 그렇지만 한 겨울인 어느 설날 - 그것도 눈이 내린 서울에서 택시가 안 잡혀 버스를 타고 텅 빈 서울시내를 가로질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버스에서 한국인은 나 하나뿐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외국인이었다. 뉴스에서 보면 이제 명절의 풍속도가 바뀌었네 젊은 사람들은 차례를 지내는 대신에 외국에 가네 하지만 이번 6일 연휴에도 나는 원한다면 일본행 비행기 티켓을 살 수 있었다. 그리고 텅 빈 서울 시내는 아직도 사람들이 추석을 가족과 함께 보낸다고 말하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아메리칸 스타일의 가족의 나는, 어렸을때는 생각보다 마음의 타격을 크게 받지 않지만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명절은 지옥을 상징하는 단어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기에) 그럼에도 드라마에서 나온 가족같은 화목한 명절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어른이 된 지금은 명절이라기보다는 그냥 연휴에 가까운 것 같다. 용돈을 받는다는 설렘도, 오랜만에 가족들을 보고 엿같은 상황을 견뎌야 한다는 고통도 없다. 그냥 오롯이 예술의 전당 한복판에서 그림을 보는 나 하나뿐. 가족도 있고, 결혼도 한 나는 명절 당일이 되면 그 어느 때보다 그렇게 원하던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도 나 자신의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떠한 가족에도 속하지 못하는 죄로 말이다.


이에 대해서 20살 무렵에는 제법 마음이 아팠다. 남들은 다들 부모를 만나러 가거나 명절인데 나는 언제나 내가 살고 있는 그 도시를 지키는 요정이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아니 정확히는 따뜻한 공동체에 속하고 싶다는 나의 마음은 언제나 외면받았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가족을 이룬 지금도 나는 명절마다 공동체보다는 개인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더욱 강하게 느낀다.


아마 사회가 시간을 먹어가면서 - 나 같은 명절 난민들은 더욱 많아지지 않을까. 나는 생각하지만 글쎄. 네이트판을 보면 막상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며느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강제 징용자처럼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가족들은 불만과 싸움으로 가득하다. 물론 작은 것으로 전체를 평가할 수 없지만 그것은 마치 나에게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MZ화(?) 되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절은 텅 비는 서울을 보면 MZ화 된 명절은 아직도 멀고 먼 명절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나같이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명절 난민들이 좋을지 불타는 '전'쟁터의 명절이 좋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 명절 난민들은 명절 당일에 연 예술의 전당에게 감사를 표하며 삼삼오오 명절 난민으로서의 약간의 씁쓸함과 달콤함을 가지고 명절을 보내고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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