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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장병장 Sep 22. 2019

그녀가 두고 간 것

천하장사도 소용없다는 눈꺼풀의 무게를 내가 어찌할 수 있을까. 스르륵 감기는 내 두 눈에 나는 순응했다. 대신 입을 벌려 소리를 냈다. 완벽한 단어와 문장은 아니어도 좋다. 그냥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게끔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나는 단지 내가 살아있음을 알려주려 했을 뿐인데, 주위의 가족들이 탄식을 한다. 이어지는 곡소리에 내 노력이 다 무안하다. 그리고 한편으로 나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어느새 내 나이는 100세를 넘었고, 삶의 미련도 아쉬움도 다 뒤로 넘겼다.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멈추고, 내 숨소리만 들릴 때쯤, 내 머릿속 영사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의 아내와 자식들, 우리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동생, 내가 살던 집,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개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보였다. 재미없이 산 인생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보니까 나름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있다. 그러다 나의 인생영화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너무 오래전이라 잊고 있었던 그녀가 나타났다. 그것도 마지막 가는 길에.


어느덧 내 '인생영화'는 그녀와의 강렬했던 추억을 비추고 있었다. 잊지 못할 6월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호기롭게 말을 건넸다. “영화 보러 갈래” 영화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한 취미생활이자 여가생활이며 전 국민이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활동이다. 하지만 말을 건네는 대상에 따라 그 난이도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나는 이 점을 간과했다. 그리고 그 시절 나는 가장 어려운 대상에게 이 말을 건네다 좌절을 맛봐야만 했다. 처음에 그녀는 나에게 여지를 주었고,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길을 걷다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다. 하지만 이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띵’하고 울리는 알람 소리와 함께 온 문자메시지에는 영화를 보지 못할 것 같다는 길고 긴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녀는 나를 흔들어 놓았다. 기쁨과 환희 그리고 절망과 괴로움으로 그녀는 양쪽에서 나를 당겨 흔들어 놓았다. 이때의 강렬했던 기억이 다시 죽기 전 나의 머릿속을 채웠다. 못다 한 나의 마음이 아쉬웠다. 문득 그녀가 너무 보고 싶었다.


아쉬움과 그리움에, 나는 '인생영화'가 나오는 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감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어찌나 번쩍 들어 올렸는지 주위에 있던 가족들이 모두 달려왔다. 잠잠했던 곡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힘이 남아있더라면 가족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싶었지만, 역시나 그만한 기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자식들을 쳐다봤다. 그러곤 ‘조용히 좀 해, 자식들아’라는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자 아이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한 마디를 기다린답시고 침묵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 그리고 이내 나는 이 모든 상황이 힘에 부쳐 다시 눈을 감고 머릿속에서 상영 중이던 영화를 다시 재생했다. 영화 속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 옆에 나도 웃고 있었다. 그 시절 나는 그녀와 함께라면 별것 아닌 것에도 필사적으로 웃음을 지었다. 낙엽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음을 짓는 여고생들처럼 나는 웃음에 헤펐다. 그러다 화면이 바뀌면서 그녀가 어서 오라는 손짓을 했다. 내가 어디로 향할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그녀의 손에 이끌려 간 곳은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이제 영원한 안식에 접어드나 했지만, 반대로 이 곳은 치열했고, 힘들었으며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왜인지 모를 희망이 있었고, 도전할 수 있는 여력이 남아있었으며 무엇보다 꿈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젊음이 있었다. 그녀는 내가 그녀를 사랑했던, 그리고 한없이 순수했던 나의 청춘으로 나를 데려왔다. 주름이 깊게 배겨있던 나의 얼굴은 팽팽했다. 자글자글하던 내 손은 온데간데없고, 젊은 시절 앳된 내 손이 보였다. 10분 전 만해도 모든 걸 체념하고, 마무리를 짓기 위해 애써 외면하던 것들이 생각났다. 덮어놨던 아쉬움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부딪혀 이겨낼 수 있다는 마음이 생겼다. 어느덧 내 육체와 정신이 모두 그녀를 열렬히 사랑했던 나의 청춘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녀는 나의 못다 핀 첫사랑이자, 청춘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나의 인생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아쉬움을 뒤로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던 젊은 시절의 나였다. 이제 청춘시절의 ‘내’가 남은 러닝타임을 채우고 있다. 좌절하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그 시절의 바로 ‘내’가 있었기에 지금 옆에서 울어줄 가족이 있고, 내가 있었다. 나는 남은 시간을 청춘을 떠올리는데 보냈다. 오로지 가장 소중했던 것, 젊음과 청춘을 생각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리곤 모든 것이 그러하듯, 나의 인생영화는 끝이 났다. 나도 이제 작별인사를 할 때가 됐다. 찰나였지만 좋았다. 자연스레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비로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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