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이 꺾였다
그럼 그렇다. 어쩐지 내게 너무 어울리지 않은 일인 듯싶었다. 결국 끝이 이상하게 나버렸다. 내 손톱의 주인공은 별말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더도 말고 딱 남들만큼을 바랐는데 손에 쥐어보기도 전에 손틈새로 새어나가 버렸다. '뭘 잘못한 걸까'라는 생각은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을 찾아와 말을 걸었다. 우연으로 시작한 만남만큼이나 사라짐도 급작스러웠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서서히 서서히 밀물과 썰물이 바뀌듯 그 사람은 내 곁을 떠났지만, 적어도 그 당시에는 그리고 지금 느끼기에도 이별을 고하는 방식이나 속도는 깜짝스러웠다. 내 손톱이었지만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말뿐인 약속을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기억으로는 얼마 안 있어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한 것 같다. 불안함과 초조함이 이로 말할 수 없었다. 큰 충격의 여파로 나는 다시 손톱을 괴롭혔다. 그렇게 열 손가락을 모두 못살게 굴고도 모자라 손 끝에 있는 살점을 씹어대기도 했다. 뭐가 그리 불안했는지 깊고 또 깊게 살점을 뜯다가 피를 보고 나서야 멈췄다. 내 손에게도 그리고 내게도 쉽지 않은 순간들이었다.
그날 이후로 아직도 내 손톱은 울퉁불퉁, 불안과 초조함과 싸운 흔적이 가득하다. 그래도 한참을 헤매던 시기의 바짝 물어뜯긴 손톱보다는 그 모양이 낫다. 손톱 주변에 치아 모양으로 움푹움푹 파여있던 살점들도 어느새 새 살이 돋아 제법 그럴싸해졌다. 마찬가지로 마음도 건강한 모습을 찾으려 회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밥을 먹다가, 동네를 걷다가 그러니까 일상생활을 하다가 높은 곳에서 쿵하고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롤러코스터에서 터널 속 안, 아래로 떨어질 때처럼 육체가 앞서 나가고 그 뒤로 정신이 딸려오는 느낌. 지금도 손톱과 살점들이 조금씩 모자란 것처럼 속 깊은 곳 어딘가에선 성하지 않은 곳이 남아있는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 왼손 약지에 대중없이 자란 손톱이 눈에 띄었다. 자랑할 사람이 없어져 관리받지 못한 채, 그 양 끝이 각을 세우고 미운 모습으로 방치된 손톱이 보였다. 그곳엔 아직 남은 소원이, 미련이 자라고 있었다. 다른 손가락들을 상대로는 야금야금 마음을 다 깎아놨는데 미련한 내게 미련이 떠나지 못하고 피어났다. 그리고 그걸 의식하게 된 순간, 긴 시간을 애써도 끊기 힘든 버릇을 악착같이 참아온 것처럼 왼손 약지 손톱만은 사수하기 시작했다. 왜 그랬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절대로 잃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중심을 잡으려다 애지중지하던 그 손톱이 꺾어버렸다.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었다. 손톱이란 걸 기른 적이 없으니 꺾여본 적도 없을 수밖에. 잽싸게 빈자리에 앉았다. 왼손 약지를 들여다봤다. 꺾인 부분에는 하얗게 선이 짙게 그려져 있었고 그 주변에는 손톱 아래 피가 맺혀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얼얼한 것이 크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이질감과 함께 거기서 딸려오는 불편함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역시 처음 느껴본 감각이었다. 왼손 약지를 조심스레 부여잡고 생각에 빠졌다. 지금이라도 하얀 절취선을 따라 오물오물 손톱을 이로 잘라놓을까. 아니면 그대로 간직해 둘까. 그렇게 곰곰이 생각에 빠지다 집 앞 정류장까지 다다랐다. 고민에 차치해 둔 꺾인 손톱을 다시 바라봤다.
아직까지도 그 손톱은 깎지 못했다. 집에 도착해서도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그냥 두기로 했다. 작은 동작에도 여전히 불편함이 느껴졌지만, 이상하게도 깎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기분 탓인지 하얗게 그어졌던 선은 조금 옅어졌고, 맺혀 있던 피도 서서히 색이 빠지고 있었다. 처음엔 묘하게 느껴지던 이질감도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지금까지 이렇게 내 왼손 약지 손톱엔 한쪽이 꺾였는데도 놓지 못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 끝난 걸 알면서도 그 끝마저 꼭 쥐고 있어야 덜 허전할 것 같은 마음. 그렇게 꺾인 채 남은 손톱을 바라보며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조금씩 미련을 키워가고 있었다. 완전히 떼어낼 자신이 없어 오늘도 그냥 조심스레 감싸 안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