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은 내 최애 프로그램이다. 한 회도 빼놓지 않고 시청했다. 토요일 약속이 있거나 못 보게 되는 날이 생기면 다시 보기를 통해 기필코 챙겨 봤다. 군입대로 불가피하게 볼 수 없었을 때는 동생에게 매주 무한도전 다시 보기 파일을 모아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무한도전은 그 시절 내게 그 정도의 존재였다. 그 많은 정을 줬는데 아직 다 회수하려면 멀었다. 그래서 최근에도 무도 생각이나 챙겨볼 때가 종종 있다. 재밌는 사실은 다~ 아는 내용이다 보니 프로그램 속 내 시야가 자연스레 넓어져 버렸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다 알고 있는 자의 여유랄까. 그러다 발견한 가장 눈에 띄는 것 한 가지. 도저히 외면하기 쉽지 않던 건, 바로 하하의 손톱 물어뜯기다. 보다 보면 종종 하하가 손을 입에다 대고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게 참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한번 보이기 시작하니 계속 눈에 밟히는데, 너무나 익숙한 실루엣이다. 연예인도 카메라 앞에서 참을 수 없는 그 쾌감(?). 동네에서 꽤나 손톱 물어뜯기로 유명한 나로서는 이런 모습들을 가만히 보다 보면 공감을 넘어 하하와 혼연일체 되는 느낌이 들었다.
불안하면 여지없이 손톱을 입에다가 대고 잘근잘근 씹는다. 어렸을 적에 뭐가 그리 불안한 게 많았는지, 손을 입에 물면 어머니는 내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오래전부터 나한테 "손! 손!" 이러시기 일쑤였다. 가끔씩 놀랄 만큼 좋은 발성으로 나를 노려보며 "손!"을 외치던 우리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을 때가 많았지만, 손톱 물어뜯기는 불가항력이었다. 무의식 속에 이뤄졌고, 외마디 외침 한 마디에 내가 무얼 하고 있나 깨달았으니 도저히 막아 낼 도리가 없었다. 수많은 엄마발 잔소리 중에 아주 예전부터 지금까지도 듣고 있는 손톱 잔소리는 이렇게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한다. 그리곤 한편으로 이렇게 긴 시간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고치지 못한 것에 우리 엄마께 심심한 사과를 말씀을 올린다. "미안 엄마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가 봐"
그러다 어느 날 한 사람이 그러니까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손톱 깨물기를 하지 말아라"하고 주문을 넣었다. 그렇게 긴 시간, 어머니의 눈초리에도 손과 입의 만남을 멈추지 못했는데 이 사람의 한마디에 나는 마음속 깊이 들어온 그 말을 새겨 넣었다. 그분은 내게 설레는 사람이었다. 앞에 서면 항상 완벽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허나 나는 본디 하자 많은 인간이라 너무나 잘 보이고 싶은 그 사람 앞에서도 아마 수십 번은 더 손을 입에 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중요한 건 얼뜨기 어린아이처럼 손가락을 입에 물고 있는 어벙한 내 모습에 대한 자책이 아니었다. "보기 안 좋다"는 말 그리고 이어진 "손톱을 안 뜯으면 소원 하나 들어줄게"라는 그 문장이 더 중요했다. 말의 방점을 어디다 찍느냐의 문제에서 나는 후자에 걸었다. 손톱 따위야, 중요한 방점을 비로소 빛낼 장신구처럼 느껴졌다. 허리춤까지도 기를 수 있었다.
손톱 물어뜯기를 참는 건 쉽지 않았다. 무의식을 의식으로 끌어오는데 몇 번이나 놓쳐 손톱을 내주며 소원을 얻을 소중한 기회를 걷어찼다. 웃긴 건 끈질기게 의식하길 멈추지 않다 보니 손톱 물어뜯기라는 오랜 시간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 척수반사처럼 불안하거나 초조할 때 입이 손가락을 찾는 걸 막아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손톱이 균일하게 예쁜 모양으로 열 손가락 끝 위에 자리 잡고 있는 게 마치 화초를 키워내는 기분 같았다. 살아 처음 본 생경한 내 손을 보고만 있어도 뿌듯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내 손에 핀 인내심의 산물을 자랑하고 함께 건 낼 소원들을 생각하느라 참 기뻤다. 별거 아닌 거에 행복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