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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믐 Jan 07. 2021

퇴사 D-1, 컴플레인 전화를 받았다

해결은 됐으나 기분은 안 좋다

이제 퇴사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오늘 아침부터 가위에 눌리는 바람에 반차를 쓰고 잠을 더 청하다가, 결국 한 시간 정도만 더 자고 일어나버렸다. 습관이 무섭다고 반차 쓴 와중에 세탁기 돌리고, 빨래 개고, 밀린 설거지를 하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눌린 가위에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며 늦은 출근길에 올랐다. 오후의 내게 무슨 전화가 걸려올지 모른 채.


최근 회사에서 배송 관련 업무가 많았다.

배송을 보낼 곳도 많았고, 그래서 명단 정리를 하느라 하루를 다 보낸 적도 있다. 우여곡절 끝에(크리스마스 연휴를 반납하면서 뒷수습했던 일과 관련 있다...) 배송을 얼추 다 보내고 난 다음부터는, 혹시 불만 전화가 올까 봐 걱정했다. 12월 말에 신청했는데 왜 아직도 안 와요? 이런 식의 전화 말이다. 혹시나 내가 마지막까지 잘못한 게 있을까 봐 너무 걱정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그 유형의 전화가 걸려왔다.

사실 이 전화는 내가 전적으로 담당한 업무는 아니었고, 업무를 담당하신 분이 뭘 잘못 처리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코로나19가 변수로 작용하여 배송에 차질이 생긴 케이스였다. 그러나 컴플레인 전화를 거신 고객님이 그 점을 다 헤아릴 것이라고 기대할 순 없었다. 나 같아도 일단 배송이 느려 터졌다는 사실에 짜증부터 날 테니 말이다. 아무튼, 그분은 그렇게 전화를 걸어오셨다.


분명 0월 0일까지 온다고 했는데 안 왔어요. 어떻게 책임지실 건가요?


요약하자면 위의 대화였다. 나는 우리 측에서 더 이상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어필하려고 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돌한 상태여서 결론이 쉽사리 날 것 같지 않았다. 전화를 건 시간이 이미 오후 시간대였기 때문에 새로 배송을 보내기에도 무리였다. 고객님은 화가 났고, 나도 화가 났다. 이미 회사 손을 떠나 택배사로 넘어간 버린 품목에 대한 두 사람의 대화는 점점 감정적으로 변했고, 주위 직원들의 신경 쓰는 듯한 반응을 서서히 느끼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 해결됐다.

어떻게 어떻게 하여 고객님의 손에 새로 배송 품목을 드릴 수 있었다. (갖다 드리러 내가 직접 간 건 아니다) 고객님과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 통화를 결국 '감사합니다'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맨 처음 해당 고객님의 컴플레인 전화를 받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알 수 없었던 나름의 해피엔딩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에도, 일이 그래도 잘 처리된 직후에도, 집에 돌아온 이후에도 마음이 불편했다. 오늘의 기억이 너무 강했다. 내일도 같은 사안으로 전화가 막 걸려올 것만 같았고, 그래서 샤워하다가 급격히 우울해졌다. (원래 기분 좋아지라고 샤워를 하는 편인데 오늘은 통하지 않았다) 잊고 있던 불안증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이때에는 맛있는 걸 먹어도, 보고 싶은 사람을 봐도 사실 잘 낫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난 앞서 말한 두 가지를 모두 행했음에도 이 글을 쓰는 지금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다. 내일이 마지막 근무임에도, 그 회사의 일이 계속 내 발목을 잡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아주 과한 기분인 걸 나도 안다) 퇴사를 하루 앞두고, 여전히 난 다음날을 위해 심호흡을 하며 잠들 예정이다. 그래도 잘 해결됐다는 자그마한 위안 하나를 마음에 우려낸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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