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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믐 Jan 22. 2021

취준생도 힐링이 필요해

내가 설거지 안 해도 되는 그런 힐링

요새 수면장애가 다시 생겼는지 졸리고 피곤한데도 잠에 들지 못해 자정 전에 누워도 꼭 새벽 2시~3시까지 깨어있다가 잠들곤 한다. 그러다 보니 피곤은 날이 갈수록 몸에 쌓였고, 그래서 원래도 잘해 먹지 않던 밥을 거의 다 사 먹게 되었다. 배달음식만 먹다 보니 속은 속대로 더부룩하고, 통장은 텅장이 되고, 살은 살대로 쪘다. 그래서 오늘 도망치듯 서울을 벗어나 고향으로 내려왔다. 당분간은 돈도 굳히고, 먹고 놀 요량(이라 쓰고 구직사이트의 노예가 될 예정)으로 말이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하루 종일 날씨가 흐렸다. 난 원래 달팽이관이 예민한 사람이라 버스의 고무 냄새나 기차의 꿉꿉한 냄새를 못 견디는 타입이다. 그래서 난방이 빵빵한 대중교통을 선호하지 않는다. 냄새가 더 나기 때문이다. 멀미가 심한 편인 사람들은 날씨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맑아도 고무 냄새만 맡으면 멀미를 하게 되는데, 흐리다면 오죽할까. 오늘 일어나자마자 날씨를 확인하곤 좌절했지만, 그래도 서울에 계속 있다가는 내장지방 많은 비만인이 될 것 같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서울역까지 갔다. 


자다가 부산까지 갈 뻔했다.




고향집이라고 몸과 마음이 막 엄청 편한 건 아니다. 이미 취업에 성공한 가족 구성원과, 한 회사 20년 근속 경력의 아빠 앞에서 나는 한낱 조무래기에 불과하기에, 얼른 어디라도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래도 서울보다 고향집이 낫다고 하는 건, 내 손발이 좀 더 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나이 또래 청년들의 놀부 심보나 다름없긴 한데 우선 집밥을 먹을 수 있다. 물론 나야 집밥을 전적으로 담당하던 엄마의 부재로 매끼 고기나 메인 요리 하나로 나눠먹는 식이지만. 그래도 서울살이 하다가 왔으니 고생했다고 가족들이 밥도 차려주고, 설거지도 나 빼고 둘이서 번갈아가며 한다. 나는 이것도 먹고 싶다, 저것도 먹고 싶다 입만 살아 움직이는 철부지 막내딸이 된다. 


고향에 있는 동안엔 내 돈을 쓸 일이 거의 없다. 아빠 카드 찬스를 쓰거나, 형제자매의 지갑을 열리게 한다. 아마 내가 막내 포지션이라 가능한 모습인 것 같다. 코로나가 생기기 전에는 외식하러 식당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트나 다이소 등을 들렀다 올 때가 많다. (식구들이 다 집순이라 한번 나갈 때 일을 다 처리해야 한다) 그때 나는 아예 외출할 때부터 지갑을 챙기지 않는 대범함을 보인다. 어차피 결제는 나 빼고 다른 사람이 하게 될 테니까^^


이런저런 이점 때문에 이번엔 취업 스트레스를 한가득 안고 있음에도 무작정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물론 며칠만 있다가 다시 상경할 예정이라 짐도 별로 안 들고 왔다. 내일은 형제자매와 함께 카페로 가 할 일을 할 생각이다. 한 시간 안에 끝나면 좋으련만,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일 방문할 카페도 내 돈이 아닌 형제자매 소유의 기프티콘을 쓸 계획이다. 솔직히 다이어트를 선언해 놓고 여기 있는 며칠 동안 살이 더 찔까 걱정이다. 내일부터는 진짜, 지인짜 밀가루 음식 줄이고 조깅도 나가야지.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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