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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믐 Feb 07. 2021

행복하자 햄볶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망고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스트레스 폭발!


퇴사하고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가 면접날을 기점으로 팡 터져버린 건지 오늘 아침에도 속은 여전히 불편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예 빈속일 땐 괜찮다가, 뭘 먹으면 소화하는 과정에서 속이 쓰리고 명치를 누가 바늘도 찌르는 거 같고, 아예 그냥 위 전체를 누가 콕콕 찌르는 느낌이 든다. 이 증상도 처음 겪을 땐 '위암인가!'싶어 놀랐었는데, 이제는 안다. 위염의 증상으로 바늘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은 자극적인 식사를 절대 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몸이 아프긴 한 것 같은 게, 원래라면 배고파서 바로 배달앱으로 밀가루 음식을 시켰을 텐데 오늘은 점심때가 되어도 배가 그리 고프지도 않았고, 그래서 샐러드를 시켜 점심으로 먹었다. 닭다리살을 그릴로 구워 토핑으로 얹은 샐러드였어서 그냥 이것만 먹고 오늘 물 말고 아예 먹지 말까 하다가, 이러다 또 당 떨어져서 편두통까지 오면 골치 아프기에 부지런히 에이드도 만들어먹고, 저녁으로 죽도 시켜먹었다. 또다시 밀가루 금지령을 스스로 내려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기만 했다. 이상하게 속이 아플 때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소화될 때 속이 불타는 듯한 느낌이 심하게 들어 잠을 자지 못하겠다. '저자극 스킨케어'란 말이 있듯 '저자극 위장케어'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어릴 때 아프면 엄마는 말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이 말은 엄마가 자주 했다. 학교에 다니다 심하게 아플 때면(그리고 난 한번 아프면 쉽게 고열을 동반했다), 다음날 학교에 나를 등교시키니 많이 하는 문제로 아빠랑 엄마가 싸우는 걸 볼 수 있었다. 내가 대학교에 가기 전만 하더라도 우리 집은 철저한 가부장제였기에 나는 거의 울다시피 열이 나는 상태로 학교로 갔던 게 대부분이긴 하다. 그런데 한 번은 내가 너무 아파 화장실 전등 색깔이 갈 때마다 다르게 보인 적이 있었다. 원래는 밝은 흰색인데, 열이 나자 파란색, 초록색, 주황색 등으로 다르게 보였다. 나는 제발 다음날 조퇴 찬스라도 달라는 심정으로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학교 갈 시간이 훨씬 지나있는데도 엄마가 날 깨우지 않고 있었다. 알고 보니 엄마의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이렇게 아픈 애를 학교에 보낼 셈이냐!'라는 주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통했던 것이다. 엄마의 웃지 못할 유행어는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마인드에서 비롯됐다. 학교에 다니고 공부하는 건 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인데, 이렇게 아픈 상태에서 학교에 보내는 건 잘 먹고 잘 사는 것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아픈 머리에 수업 내용이 들어올 리도 없고. 그렇게 엄마의 강한 주장 덕분에 나는 하루를 쉬고, 몸이 훨씬 나은 상태에서 다음날 등교를 할 수 있었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니까 별 생각이 다 든다. 사실 지금 아픈 건 이때까지 응급실 실려갔던 경험에 비춰볼 때 별로 크게 아픈 것도 아닌데 혼자 있으니 은근히 더 감성적이게 된다. 10년? 15년? 전만 해도 아프면 엄마가 옆에서 밤새 간호해줬는데, 대학 오고 난 뒤로 아프면 룸메이트를 깨우거나 혼자 병원을 검색해가며 나으려고 애를 썼다. 이런 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가 싶다가 괜히 외로워하고 그런다. 이러니 사람은 아프면 안 된다. 정말.


어제 위가 아파 밤새 뒤척이는 바람에 새벽 4시가 넘어 잠들었다. 위산이 흐르는 느낌이 너무 적나라하게 들고, 그걸로 통증이 생겨서 신경 쓰여 잘 수가 없었다. 구차한 변명이지만 그래서 결국 오늘 토익 시험을 치러 가지 못했다. 갔으면 아마 속이 더 뒤집어졌을 것 같긴 하다... 추가 접수로 접수한 거라 돈도 근 5만 원이 나갔는데, 아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난 누구보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라는 말을 믿는 사람이다. 당장 눈앞에 닥친 할 일 처리하느라 몸은 뒷전이 되면, 나중에 엄청 큰 병원비가 되어 돌아오더라. 그러니 우리 모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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