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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만 Nov 14. 2019

사람과 사람 사이

타인은 지옥이다. 출퇴근길의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라. 모두가 오래 찐 시루떡 같고 켜켜이 쌓은 서류철 같다. 푹푹 찌는 찜통 안에서 옆 사람과 눌어붙지 않으려 몸을 틀어보지만, 보라! 끝없이 쏟아지는 업무처럼 계속해서 밀려오는 저 인파를.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삶의 의지가 꺾인다. 머릿속엔 그저 한 가지 생각뿐이다. 집에 가고 싶다. 


자가용 운전자라고 뭐가 다를까. 나 빼고 다 미친 자이다. 운전을 뭐 저렇게 해, 싶은 인간들만 있다. 운전을 해도 될 만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 흉기 대신 차를 가진 예비 범죄자들이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을 노리고 있다. 원수는 도로 위에서 만난다.

 

서울살이 10년 끝에 지방도시로 내려왔다. 더는 사람에 치여서 살지 않아도 되겠구나 했지만 웬걸, 이곳에도 타인들은 넘쳐난다. 서울도 아닌데 땅값은 왜 그리 비싼지, 밀려나고 밀려나서는 도심에서 꽤 떨어진 면 단위까지 왔지만 여전히 이곳 버스는 만원이다. 시내에서 일을 보고 집 앞 종점까지 한 시간 거리를 앉지 못하고 올 때가 많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누가 그리 살까 싶지만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그들 사이에서 자리를 차지할 엄두는 못 낸다. 한국의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구나. 교과서에서 느끼지 못한 현실을 버스 안에서 절감한다. 


삼강오륜을 강조하는 나라에서 나고 자란지라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데 큰 거리낌은 없다. 대부분의 경우는 말이다. 하지만 가끔씩 내 몸이 부서질 듯 힘들 때나 마음이 녹아내릴 듯 괴로울 때가 있다. 팔이 빠질 듯 무거운 짐이 있을 때를 비롯해서 말이다. 그럴 때 자리에 앉아 있으면 버스 문이 열릴 때마다 기도하게 된다. 제발, 나이 든 분들 타지 않게 해 주세요. 다른 분들이 먼저 양보하게 해 주세요. 내 앞에는 오지 않게 해 주세요.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데 내 앞자리에 있던 분이 내리려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타는 버스라 서서 가는 노인들도 있어 당연히 자리에 앉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다른 분이 앉을 수 있도록 비키려는데 한 할머니가 내 겨드랑이 밑을 파고들어 재빨리 자리에 앉는 것이다. 바스락, 내 인류애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어차피 앉을 생각도 없었지만 이건 너무 예의 없는 일이 아닌가. 아무리 앉고 싶어도 그렇지, 겨드랑이 사이로 지나가는 건 좀 수치스럽지 않나. 몰염치한 이런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다. 이런 불쾌한 사람들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서울 살 때의 일이 떠올랐다. 


엄마가 나를 보러 서울에 올라온 적이 있었다. 함께 지하철을 타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엄마가 잽싸게 열차에 올라타는 것이었다. 내리는 사람이 먼저 다 내리고 타는 것이 매너인데 엄마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내리려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자리를 잡으시고는 “가영아, 여기!”하며 손짓을 하는데 그때의 심정이란…. 지금보다도 더 꼿꼿한 원칙주의자였던 나는 환하게 웃는 엄마를 보며 부끄러워졌다. 매번 저런 아주머니들이 있으면 속으로 예의가 어쩌고, 교육이 어쩌고 하며 분노했었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그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으니 남의 엄마 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주위를 둘러봤다. 엄마의 행동에 말없이 욕하고 있는 수십 개의 눈동자가 보였다. 아마 내가 누군가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저런 사람 없어졌으면 좋겠어. 수치심도 없는 무례한 노인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을 주장했던 공리주의자 벤담의 사상을 풀이해보면 이렇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해 나머지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행복의 총량이 희생당한 이가 겪는 고통의 양보다 크다면, 그 희생은 옳다. 그러므로 다른 사회 구성원에게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격리시켜 사회 전체의 쾌를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논의에서 본다면 지하철 안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했던 엄마는 추방당하는 것이 맞다. 추방당한 엄마의 슬픔보다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쾌감이 더 크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런 벤담의 주장에는 빠진 것이 하나 있다. 우리 엄마의 삶이다. 


나의 엄마. 그녀는 술 좋아하고 무능력한 아버지 밑에서 어린 동생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일찌감치 사회에 뛰어들었다. 역시나 가난했던 남편을 만나 단칸방에서부터 시작하여 지금의 번듯한 아파트를 마련하기까지 그녀의 일생은 참으로 고단했다. 시아버지를 모시고 조카까지 데리고 살면서 한 번도 손에서 일을 놓은 적이 없었다. 그래도 그 삼십 년의 고생이 있었기에 어엿하게 딸자식 키워 서울에까지 보내 놨는데, 이제 그녀는 남들에게 눈총이나 받는 신세가 되었다. 우리 엄마의 인생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엄마의 인생을 알고 있다. 엄마는 그저 사람들에게 민폐나 끼치는 늙은이가 아니다.  


언젠가 퇴근길의 만원 버스에서 “그건 정말 제가 한 게 아니라고요!”하고 소리치던 젊은 여자가 있었다. 통화 중이었다. 이렇게 사람 많은 대중교통 안에서 저게 무슨 행동인가 싶어 그녀를 쳐다봤다. 물론, 그곳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랬다. 따듯한 시선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전화를 끊고 울기 시작했을 때,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녀를 비난할 수 없었다. 그녀의 통화 내용을 우리 모두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반 아이 중 하나가 친구와 다투다가 상처가 난 것 같았다. 화가 난 아이 엄마가 퇴근하던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했는데 거듭되는 사과에도 아이 엄마의 화는 수그러들 줄 몰랐다. 결국 감정이 폭발한 그녀가 큰 소리를 한 번 낸 것이었고, 그로 인해 그녀는 또다시 학부모에게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쯧쯧, 참 힘들겠다. 그것이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의 중론이었다. 다들 이젠 그녀를 이해해 주었다. 울어도 괜찮다고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삶이 있다. 그리고 이야기가 있다. 그 삶과 이야기를 안다면 더 이상 그 사람을 사라졌으면 하는 존재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내게 불쾌감을 줬던 그 할머니를 생각해 본다. 평생 농사지으며 힘겹게 키운 딸아이가 직장에 간 사이, 손주를 돌봐주러 시내에 갔다 오는 길이었을지 모른다. 실제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일 만큼 고생하며 살았지만 조그만 아이를 봐주는 것만큼 기력이 다하는 일이 없어 어떻게든 버스에서 앉아있고 싶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한 소쿠리에 이천 원 하는 나물 몇 바구니 팔고자 거리로 나갔지만 하루 종일 아픈 남편 약값도 채 못 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심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올려다보며 나물 몇 자락 들었다 놨다 하다 보니 어깨부터 허리까지 결리지 않은 곳이 없었을지 모른다. 아니, 그런 사연 아니고서도 그녀는 내가 함부로 존재를 부정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다. 


TV에서 6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던 한 평범한 남자가 인터뷰하는 걸 보았다. 평생 다니던 회사에서 몇 년 전 은퇴하셨다고 한다. 이후 차를 계속 몰기도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고, 버스를 타자니 젊은 사람들이 불편해할까 염려되어 집에만 있게 되었다고 하신다. 기껏해야 우리 아빠보다 서넛 정도 나이가 많은 분이셨다. 한때는 산업의 역군이었을, 그리고 한 가정의 자랑스러운 가장이었을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인간은 그 존재만으로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조금의 불편함 때문에 누군가를 집 안으로만 몰아넣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집 밖으로 나가자. 조심은 하되 누군가와 부딪치게 되면 사과를 하자. 그러면 거기에 웃어주자. 나 역시 누군가를 치고 돌아다녔음이 분명할 테니 말이다. 그저 자기 인생을 열심히 살던 사람이 내 인생에 한 번 들어왔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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