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
오만의 마음치유 일기 11 - 내가 연극을 하는 이유
클레어의 능력은 '불사(죽지 않음)'다. 미드 히어로즈의 이야기다. 그녀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달리는 기차에 받히는 등 자해를 통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는 그동안 그녀의 존재 확인이 위험한 상황에서 느끼게 되는 격렬한 심장 박동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님을 오늘 아침 깨닫게 되었다. 그녀의 '살아있음'은 목숨을 위협하는 순간이 아닌 그 순간으로 알게 된 일상의 안정감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말이다.
오늘 아침 형님께 문자가 왔다. 지난번 올린 글을 잘 봤다며 요즘 기분은 어떤지 물어왔다.
"며칠 전 연극 연습을 하면서 살아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하고 문자를 보냈다.
"몸을 움직여'주는' 걸로 에너지를 '받았'군요.
가영 씨에겐 살아있다는 느낌이 어떤 의미를 주나요?"
형님의 질문에 '살아있는 느낌'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연기를 하며 내가 느끼는 즐거움은 감정을 표현하는 데서 온다. 나를 표현하는 것, 나의 감정을 안전하게 드러내는 것. 그것에서 오는 기쁨. 하지만 이렇게 간단한 것이 일상에서는 쉽지가 않다. 억울해도 눈물을 보이면 안 되고, 화가 나도 때와 장소, 상대를 가려야 한다. 심지어 잘못을 해도 쉽게 사과해선 안 된다. 나의 즉각적인 사과가 언젠가 내게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쌓아두고 덮어만 두던 감정이 곪고 터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게 글쓰기와 연극이라는 표현의 도구가 있는 것은 축복이다. 내가 아닌 캐릭터의 감정이라 할지라도, 그 모든 것에는 나의 욕구와 욕망이 반영된다. 캐릭터의 것이라는 보호막 덕에 오히려 편안하게 내 감정을 표출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연기를 하면(주면) 반드시 상대배우가 반응(받아, 준다)한다. '주고받는' 관계를 통해 에너지가 생긴다. 그 에너지가 바로 살아있음의 감각이다. 내 말이, 내 행동이 누군가에게 무시받지 않고 완전히 수용되는 것. 상대가 응답하는 것. (연극 속) 세상이 온통 내게 감응하는 것. 그것들을 통해 내 존재는 안정감을 느낀다.
지금껏 나는 인간관계에서 쉽게 피로해졌다. 말을 많이 할수록 마음은 공허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내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바로 그들과의 관계에서 안전함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상대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렇게 받아들여줄까? 등의 고민으로 지쳐갔다. 반면 내가 연극에서 에너지를 얻는 것은 그런 것들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실제 현실의 관계보다 무대 위의 관계에서 신뢰감을 느낀다는 얘기다. 연극 연습을 처음 시작할 때 연출가 선생님이 눈을 감고 오롯이 파트너의 움직임을 느끼고 그것에 반응하게 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신뢰감. 안정감. 함께 있어도 에너지가 줄지 않고 오히려 커지는 관계는 바로 그런 것에서 오는 것 같다.
어색한 사람을 만나면 말을 많이 하게 된다. 침묵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견딜 수 없다기보다는 상대방이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나라도 말을 이어가려 노력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헤어지고 나면 허탈하다. 하지만 과연 상대라고 편했을까. 상대방도 끊임없이 재잘대는 나로 인해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방법을 알았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적막이 두려워 벌벌 떨며 눈알을 굴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존재에 완전히 반응해주고 그를 믿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나와 상대방 모두 관계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안정적 소통. 그것이 존재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