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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이지 Nov 10. 2023

망망고해를 건너가는 종소리: 치악산 상원사와 성황림

영혼을 위한 강원도 모터사이클 여행

천지에 가을이 들었다. 청계천 팥배나무에 팥배잎이 발갛고, 팥배알은 빨갛다. 덕수궁 느티나무에는 잎들이 노랗고, 정동길 은행나무에는 은행잎이 샛노랗다. 북악스카이웨이에 벚나무 잎들은 점점이 붉고, 복자기나무 잎들은 온통 빨강이다. 서소문공원 잔디밭에 정적의 햇빛이 스민다. 성긴 대기 위로 하늘이 파랗다. 남산 너머로 호박색 노을이 지고, 산등성이 검은 실루엣에 잔가지 하다.


가을 치악산, 적악산을 찾아간다. 치악산은 북에서 남으로 길게 내리 뻗는다. 북쪽 종단부는 비로봉에서 내리 꽂히는 산세로 험준하고, 남쪽 종단부는 남대봉에서 흘러내리는 산줄기들로 완만하다. 완강한 비로봉 자락에는 구룡사가 있고, 원만한 남대봉 꼭대기에는 상원사가 있다. 구룡사 입구에는 금강송들이 숲을 이루고, 상원사 아래로는 드넓은 활엽수 지대가 펼쳐진다. 가을에는 상원사 계곡에 드는 게 옳다.


치악산국립공원 성남탐방지원센터를 통해 상원사 계곡으로 들어간다. 지원센터부터 상원사까지는 5 킬로미터 길이다. 시멘트 포장과 비포장이 섞인 차길을 지나, 상원사 탐방로 입구에 도착한다. 상원사까지 2.6 킬로미터 산길이 시작된다.


천천히 걷는다. 길은 서너 길 아래 상원사 계곡의 좌우를 번갈아 따라간다. 계곡은 시원의 모습이다. 이곳에서 물과 바위가 태어난다. 가을이 이미 깊었는데, 숲 또한 깊으니 물의 신생은 그치지 않는다. 신생의 물은 앙증맞고 경쾌한 리듬으로 돌틈들을 골라가며 흐른다. 암벽에서 떨어져 내린 우람한 바위들이 계곡에 즐비하다. 바위에는 날 선 모서리들이 아직 살아있다. 물과 바위의 양편에서는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박달나무, 가래나무, 참나무, 피나무가 하늘로 뻗는다. 하늘을 가린 노랗고 붉은 단풍들 사이로 검푸른 소나무가 듬성듬성하고, 다래덩굴들은 키 큰 나무들을 타고 오른다. 상원사 계곡에서 생명과 무생명의 날것들은 무질서로 어울린다.


북쪽의 사다리병창길에 비할 순 없어도, 상원사까지는 산길 2.6 킬로미터 3시간 산행이다. 어려움이 없을 리 없다. 탐방로 입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길은 두 구간으로 나뉜다. 첫 구간인 1.7 킬로미터 완만한 계곡 오르막길을 걷는다. 다리 근육이 팽팽해진다. 계곡길이 끝나고, 0.9 킬로미터의 가파른 산길이 이어진다. 급경사 돌길과 데크길을 한 발 한 발 끌며 고도를 올린다. 호흡이 가빠지고 땀이 흐른다. 상원사로 오르는 마지막 고바위언덕 나무계단을 오른다. 다 왔다는 안도와 줄지 않는 계단에 대한 원망이 슬며시 섞인다. 그러자 상원사다. 상원사는 걷지 않고는 닿을 수 없는 절이다. 상원사에 이르는 길은 은근한 고행의 외길이기도 하다.


경내로 드는 길 초입에서 상원사를 쳐다본다. 아득히 높다. 바위벼랑 위에 절집들이 올라앉았다. 뒤쪽으로는 거대한 바위벽이 학날개 모양으로 절터를 감싸 안았고, 왼쪽 끝과 오른쪽 끝의 두 바위봉우리들을 오목한 축대로 걸어맨 위에 절집들이 자리했다. 오른쪽 끝으로는 이삼십 미터 높이의 수직절벽 끝에 범종각이 섰고, 범종각 앞에는 한 그루 구상나무가 홀로 섰다. 상원사는 스스로를 벼랑에 걸어매고, 바위에 들어앉혔다. 고독한 자존(自存)과 결연한 의지의 모습이다. 이곳은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저 오게 되는 곳도 아니다. 쉽게 오르는 곳도 아니다. 힘들여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짧은 돌길을 걸어 경내로 올라선다. 이곳은 해발 1,100미터 바위봉우리다. 작은 절마당을 중심으로 땅을 아끼고 층을 달리하며 절집의 터들이 알뜰하게 마련되었다. 터마다에는 담담한 규모의 절집들이 지형이 생긴 대로 칸수와 좌향을 잡았다. 위치도 높이도 방향도 모두 제각각인 듯 하지만, 절집들은 역할에 따라 구역을 나눠 안배된 듯하다. 가장 낮은 마당 구역에는 심검당, 종무소 겸 공양간, 광이 있다. 생활의 공간이다. 마당 오른쪽으로 한 단 높은 구역에는 대웅전, 범종각, 관음전, 휴휴당이 있다. 수도, 기도, 제도의 공간이다. 마당 왼쪽 뒤편으로 아찔하게 올려다보이는 바위틈에는 영산전과 산신각이 있다. 자연을 경외하고 복을 구하는 공간이다. 저마다의 절집들이 은연한 질서 속에서 하나인 듯 따로인 듯 체계를 이루고 있다.


대웅전과 범종각으로 간다. 두 절집들은 1,100 미터 고도에서 40여 미터를 떨어져 내리는 단애의 가장자리에 서있다. 대웅전과 범종각 앞에 서니 무한강산이 펼쳐진다. 절집 축대 아래서 시작되는 상원사계곡은 완만한 갈지자를 그리면서 낮고 먼 곳으로 아득해져 간다. 계곡의 양편에서는 굳센 산줄기들이 어슷어슷 계곡을 향해 뻗어 내린다. 왼쪽 산줄기가 계곡에 닿으면 그 뒤로 오른쪽 산줄기가 닿고, 오른쪽 산줄기가 닿으면 그 뒤로 다시 왼쪽 산줄기가 닿는 첩첩의 리듬이 이어진다. 시선을 드니 산 아래 마을 신림면, 그 너머 남쪽으로 제천, 영월, 충주, 또 그 너머로 소백산과 월악산까지 일망무제의 세상이 가마득하다. 어슷거리던 산줄기들이 먼 곳에 이르러서는 수평으로 출렁이더니 이윽고 희미한 그림자로 하늘과 하나가 된다. 심원해지면, 산하와 세상과 하늘이 하나다.


상원사는 하늘 위의 절이고, 하늘 아래의 절이다. “청산첩첩, 창해망망“, 대웅전 주련에 쓰여있다. 여기서는 청산이 첩첩하고, 창해가 망망하다. 창해가 첩첩하고, 청산이 망망하다. 청산이 창해고, 첩첩이 망망이다. 창공무구, 상원사에서는 창공도 무구하다.


상원사의 꿩과 구렁이 전설은 잘 알려져 있다. 경상도 의성의 나그네가 과거길에 치악산을 지난다. 꿩의 비명에 나그네는 꿩을 잡아먹으려던 구렁이를 활로 쏘아 꿩을 구한다. 가던 길을 가다가 산속에서 밤을 맞아 나그네가 길을 잃는다. 우연히 불빛이 비치는 집을 찾아드니 여인이 반가이 맞는다. 여인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다가 나그네가 구렁이에 감겨 죽을 고비를 맞는다. 여인은 낮에 쏘아 죽인 구렁이의 부인이고, 나그네를 감아 죽이려는 구렁이가 그 암구렁이다. 나그네가 살려달라고 하자, 암구렁이는 치악산 꼭대기 종루의 종이 세 번 울리면 살려주겠다고 한다. 죽기만 기다리는데, 희미한 종소리가 세 번 난다. 나그네는 목숨을 구하고, 암구렁이는 사라진다. 날이 밝아 산정에 올라보니 목숨을 구했던 꿩 세 마리가 온몸으로 종을 울리고 죽어있었다. 그 후로 적악산이 꿩치자를 쓰는 치악산(雉岳山)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상징이다. 현실은 생활, 생명, 연민, 욕망, 위기, 희망, 용서, 보답의 뒤얽힘이다. 나그네는 과거를 쳐야 하고, 구렁이는 먹어야 하고, 꿩은 목숨이 위태롭고, 누군가는 위태로운 목숨을 연민하고, 또 누군가는 이성에 끌리고, 그러다가는 해코지를 당할 위기에 처하고, 암담함 속에도 희망은 있고, 위태로울 때는 보답을 한다는 것, 그리고 갈등과 반목은 화합하고 해소되어야 한다는 것, 이 모든 게 혼재하는 건 상원사의 이야기 속이 아니라 현실이다. 상징과 현실의 다른 면은 세상의 복잡다단함은 그칠 기미가 없지만, 상징 속에서는 슬픈 결말이기는 하지만 종소리 세 번으로 이 모든 난마들이 풀린다는 것이다.


상원사 범종은 산 아래 세상의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잘랐다. 상원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해발 1,100 미터에 앉아있고, 범종은 지금 고산단애의 가장 날카로운 가장자리에서 산 아래 세상을 묵시한다. 범종 옆 구상나무는 창공 아래, 창해 위에 독존의 자세로 서있다. 벽 없는 전각의 범종은 바위의 모습이고, 한설을 맞는 구상나무는 군더더기 없이 꿋꿋하다. 범종도 구상나무도 비바람과 북풍한설을 피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지금은 종이 울릴 시각이 아니라서 범종은 묵언 중이다. 구상나무도 다만 고요할 뿐이다. 때가 되어 종이 울리려면, 먼저 인고의 비바람, 칼바람을 종신에 지녀야 하는가 보다.


소란스럽고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이 범종 소리를 들으면, 잠시나마 시달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나아가 범종 소리는 ‘어둠을 거두고, 고통을 멈추고, 괴로움은 끊으며, 지혜를 키워서, 종국에는 중생을 구제‘한다고 한다. 지혜와 구제까지는 몰라도, 범종소리가 시름 깊은 삶과 들끓는 마음을 진정시킨다는 말은 진실이다. 느릿하고, 너울대고, 슬프고, 편안하고, 미는 듯 당겨가고, 끊어지는 듯 이어지는 종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어지럽던 것들이 잦아든다. 사나왔던 것들은 조용해진다. 새벽의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 같은 소리, 석양의 들을 훑어가는 바람 같은 소리를 생각만 해도 등등했던 것들은 다소곳해지고 팽팽했던 것들은 누긋해진다.


범종은 온 세상, 온 하늘, 우주 만물에 울린다고 한다. 남대봉에 터를 잡고 치악산 전체를 종루로 삼은 상원사 종도 우주를 울릴 기세다. 상원사 종은 높이가 2.8 미터, 직경이 1.7 미터다. 무게는 청동 2,000 관, 7 톤이다. 당목도 거대한 나무기둥으로 삼았다. 종각 주련에는 ‘온세계 구석구석의 어둠을 남김없이 밝히고, 온 세상 도처도처의 고통을 여지없이 벗겨서, 모든 중생들이 깨달음에 이르게 하고 싶다‘고 쓰여있다. 온몸을 흔들어 종을 울리면, 소리는 능히 하늘과 산을 울리고 산 아래 마을들을 깨울 수 있을 것 같다. 종소리가 신림 마을들을 깨우고, 출렁거리는 산줄기들을 타고 제천, 영월, 충주에 닿고, 월악산과 소백산의 첩첩들에도 이를 것 같다.


상원사 아래 사람이 사는 마을의 이름은 신림면 성남리다. ‘신림‘은 신들이 사는 숲, 신들을 모시는 숲이라는 뜻이다. 마을에는 400년이 넘은 성황림이 있다. ‘성남’은 후삼국시대 서기 892년에 궁예가 영월, 제천, 평창, 정선, 강릉의 강원도 남동부 지역을 장악할 때 근거지로 삼았던 석남사에서 비롯되었다. 성남리에 석남사터가 있다. 일제 직전까지 상원사의 사하촌이었던 신림면 성남리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살아왔다. 이 마을 사람들은 상원사와 석남사의 종소리 아래서 성황림을 돌보며 살아왔다. 간절한 것들이 많아서 빌 데도 많았던 것 같다.


신림면 성남리뿐 아니라, 어디에서나 삶은 쉽지 않다. 삶은 고해(Suffering)다. 삶이 고해인 이유는 살아가는 과정이 늘 낯선 사건들(Events)과 갈등들(Conflicts)의 연속이고, 이 사건들과 갈등들은 삶의 문제들이며,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는 고통(Pain)이 따르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품어야 하는 삶은 고해다. 살아가는 한, 사건과 갈등이 만드는 답답함, 쓰라림, 슬픔, 외로움, 부끄러움, 회한, 분노, 두려움, 걱정, 초조, 비통, 낙담은 피할 도리가 없다.


삶의 고는 신랄하고 통렬한 고통보다는 지긋하고 찌르르한 아픔에 가깝다. 순간의 통증보다는 통증의 순간들을 치러낸 몸과 마음의 기억이다. 별다를 것 없는 날들의 무게를 견뎌내는 일, 늘 벌어지는 사달들의 캄캄함을 더듬어가는 일, 평범한 상대와의 싸하고 팽팽한 공기를 호흡하는 일, 초조하고 불안한 발걸음을 디뎌 나가는 일이 고해의 삶이다. 삶이, 생명의 과정이 고라면, 고해의 삶을 걷는 자세는 묵묵해야 마땅하다.


상원사 종이 위안, 구제, 깨달음이라는 건 진리인 것 같다. 상원사 종은 하루 두 번 빛나는 순간들을 위해 밤낮으로 비바람을 맞는다. 일 년 사철 그래왔고, 지난 천년 그래왔다. 성남리 주민들은 일 년 내내 농사일을 하면서 지낸다. 농사를 짓는 일 년은 고되다. 그러다가 일 년에 두 번, 음력 4월 8일과 9월 9일 성황림에 가서 전나무 남서낭과 엄나무 여서낭에 제를 지낸다. 제를 지낼 때는, 제관들이 마을의 안전과 주민들의 안녕을 빈다. 개인들은 금줄에 지폐를 꽂으며 건강, 성공, 평안, 화목, 행복을 빈다. 가을제에는 한해의 풍년 농사에 감사하고 축하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성황제는 일 년 노고에 대한 축하의 하루고, 무사한 한 해에 대한 감사의 제례다. 무사한 노고를 마다하지 않은 사람들의 하루 잔치다.


성남리 주민들은 그렇게 400년 동안 망망고해를 건너왔다. 상원사 아래 성남리는 조용한 마을이다. 성남리 위 상원사도 고요한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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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꿩과 구렁이로 인해 적악산이 치악산이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치악산 북쪽 구룡사의 용과 거북이 이야기가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듯이, 이 이야기도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상원사 종 이야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820년부터 1896년까지 살았던 범해선사의 말들을 기록한 < 범해선사문집 >에서 발견되고, 치악산이라는 이름은 그보다 이른 12세기 < 삼국사기 >의 궁예에 대한 기록에서 발견된다. 상원사 이야기는 구룡사 이야기와 함께 조선 중기의 혼란스럽고 어려웠던 불교가 스스로를 재정립하면서 활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래의 글들과 정보를 참조했다.


* 월정사 홈페이지 “말사 안내” (http://woljeongsa.org)


* “치악산과 사찰”, 불교신문, 2021. 10. 16.


* “상원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7235)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궁예, 양길의 부하로 활약하다“ (https://db.history.go.kr/item/compareViewer.do?levelId=sg_050_0020_0110#sg_050r_0020_0110_0009_comment)


* 원주시 공식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List.naver?blogId=wonju_city)  


* 원주문화재단홈페이지 (https://www.wcf.or.kr)


* 성종사 홈페이지 (http://sungjongsa.co.kr/bbs/board.php?bo_table=102030)


* 치악산 상원사 ‘보은의 종 유래비‘


* Scott Peck, < The Road Less Travelled: A New Psychology of Love, Traditional Values and Spiritual Growth >


* Wikipedia “Suffering”


*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범해선사문집“, (https://kabc.dongguk.edu/content/pop_heje?dataId=ABC_BJ_H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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